글 : 홍상화


"그래서 우리나라의 과학기반이 확립된 거 아니오.남덕우씨는 어땠소?"

박인호 사장이 신이 나 이현세 이사를 향해 다시 물었다.

"남덕우씨의 경우 아마 1969년경부터 6년 동안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그 후 1974년부터 5년 동안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현세 이사가 대답했다.

"그럼 거의 10년 동안 남덕우씨가 경제부처 책임자로 있었다는 말 아니오.그 동안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고요"

박인호 사장이 더욱더 신이 나 말했다.

"문민정부하에서는 왜 그렇게 자주 장관을 바꿨다고 생각하십니까?"

원래 군 출신으로 박정희 찬양론자인 박인호 사장에게 진성호가 점잖게 물었다.

"권력 과시용이었겠지요.

툭하면 ''책임자 인사 조치''를 내세워서 당장 갈아치운단 말이에요.

그리고 인기정책이고요.

공직자는 윗자리가 물러나면 올라갈 자리가 있어 좋다는 식이고 일반 국민은 뻐기던 놈 당하니 고소하다는 식이었지요"

이때 정밀기계 제조업 분야를 맡고 있는 사장이 대화에 끼여들었다.

"그러니까 다들 아예 말썽 생길 일은 피하려고 갖은 꾀를 다 부리지요.

논산훈련소에서는 훈련중 발생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훈련과정을 조작하여 위험한 훈련과정을 아예 제외시켰다고 해요"

"그게 정말이오?"

박인호 사장이 놀라 물었다.

"자,그럼 말씀들 그만 끝내시고 회의를 다시 시작하지요.

지난 금요일 저녁 10시에 IMF구제금융 요청이 있은 후 주말 동안 황무석 부사장이 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이사,황 부사장을 부르세요"

진성호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냥 두었다가는 박인호 사장이 박정희 찬양으로 밤을 새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현세가 회의장 밖으로 나갔다가 곧 황무석 부사장과 함께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황무석이 약 20분에 걸쳐 브리핑한 대해실업의 구조조정안에 대한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조직을 수출주도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고,둘째 거기에 따라 보고체제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영층 인사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브리핑이 끝난 후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황무석이 말했다.

"말해보시오"

박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 회장님 밑에 이현세 이사를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했으면 합니다.

이현세 이사를 단번에 이사에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당연히 전례 없는 파격적인 인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이고,이현세 이사는 40대 중반으로 젊고 유능하며 영국에서 학위를 받은 외국통입니다.

게다가 대해실업의 고유 업무에도 정통해 어려운 시기에 회사의 실무를 이끌어갈 최고 적임자로 판단됩니다"

황무석의 말에 회의장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현세는 몸둘 바를 몰라했고,진성호는 황무석의 갑작스런 제안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