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시대, 지식시대, 세계화시대 등으로 불리는 21세기, 인류 최대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빈부격차 심화와 절대 빈곤의 악화를 꼽는다.

특히 하루 1달러 미만 생계비로 연명하는 13억명의 극빈층 문제는 범세계적 과제다.

하지만 20세기에 개발된 주요 빈곤 퇴치 방안들과 이의 전형인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은 지탱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

이들은 그저 빈곤문제가 사회불안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 감내 가능한 수준에 머물도록 하는데 급급했다.

빈민들의 자생력을 키워 주는 근본적 처방이 아니었다.

때문에 빈부격차 심화로 관련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중산층까지도 빈민층으로 끌려 내려가는 도미노효과만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21세기 빈곤퇴치의 새 모델로 각광받는 곳이 있다.

그래민 뱅크(Grameen Bank)다.

"시골은행"이란 뜻의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 전국 4만곳의 벽촌 극빈자 3백50만명에게 1인 평균 17만원의 이른바 마이크로대출금을 연간 단리 20%의 이자율로 대출해 주어 이들이 자립 자활토록 도와주는 비영리 조합은행이다.

1가구 평균 식구가 7명임을 감안할 때 2,500만명, 즉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20% 또는 북한 전체 인구를 훨씬 넘는 사람들이 이 은행 덕에 건전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의 92%는 돈을 꾼 극빈자의 저축자금으로 마련됐고 나머지 8%는 정부 출자금이다.

이 은행은 올해 나이 60살의 무하마드 유너스 박사가 1976년 시작했다.

금 세공인의 14명 자식중 하나로 유복하게 자란 그는 22살에 경제학 교수가 됐고 25~32세 때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도미, 박사학위와 교수직을 역임한 후 1972년 귀국했다.

1974년 150만명이나 아사하는 일대 기근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코앞의 빈곤문제도 어찌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학적 경제학 이론이 마냥 부끄러웠다.

이에 그는 본격 현장 답사에 나섰다가 한 죽재 의자를 만드는 여성을 만나고 득도한다.

그녀는 밑천이 없었던 관계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고리대금업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돈으로 이와 비슷한 처지의 42가구에 돈을 빌려주어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팔았던 딸을 되찾고 그들 자신이 사실상의 노예신분에서 해방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정부와 중앙은행, 기타 다른 모든 기구가 이를 비웃었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1979년까지 5백가구를 구제했다.

마침내 1979년 중앙은행이 이에 동참했고 유너스는 교수직을 버리고 이에 전념하기 시작, 드디어 1983년 그래민은행을 정식 법인으로 발족시켰다.

마이크로대출 방식은 80년대 중반 빌 클린턴 당시 아칸사 주지사 요청으로 미국에 처음 전파돼 현재 미국 5백곳 빈민촌을 비롯해 전 세계 52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 주거지, 그리고 초등교육과 함께 최소한의 사업밑천은 인간의 기본권중 하나라고 역설하는 유너스 총재는 빈곤의 대부분 문제는 당사자들의 게으름과 무능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약자로 태어난 그들을 홀로 설 수 없게 등쳐먹는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래민뱅크 수혜자의 96%가 빚을 되갚고 자활했으며 75%는 5년 내로 가난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유너스 총재 자신은 8만여원의 월급으로 그래민뱅크 본사로 쓰이는 방 두 칸 짜리 집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여사는 유너스야말로 노벨평화상이든 노벨경제학상이든 노벨상 수상후부 0순위라고 강조하지만 유너스 총재의 꿈은 오직 온 세상의 빈곤을 "박멸"하는 것뿐이다.

전문위원/경영博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