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부하는 선배중에 클래식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피차 촌놈이고 생기기로 따지자면 그쪽이 훨씬 촌스러운데,나는 감히 그의 고상함을 넘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내겐 매양 그게 그거같은 그 지루한 음악에 있어 그는 소위 "경지"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하던 차에 하루는 내가 물었다.

"아무리 취미를 붙여볼라 해도 저는 사흘이 채 못갑니다.

형은 대체 어떻게 해서 대가소리까지 듣게 됐습니까?"

집안 전통도 있고,평소에 음악잡지도 보면서 체계적으로 어쩌구.하는 답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는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유행가는 들을 때마다 코끝이 찡하고,가사가 전부 내 얘기같고. 신경이 너무 많이 쓰이는데 반해서 클래식은 얼마나 좋아? 귀를 맡기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으면 되니까 말이야.그래서 허구헌 날 듣다 보니까 좀 친해진 거지 뭐"

최근에는 20년만에 대한해협 횡단에 재도전하는 조오련감독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다.

선발된 연예인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모진 훈련을 시키는 장면이었다.

보기만해도 속이 울렁거리는 10미터 높이의 거대한 파도.

그 섬뜩한 너울 앞에 안간힘을 쓰는 제자들에게 조감독은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수영장에서 배운대로 손은 이렇게 젓고 발은 이렇게 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면 공연한 힘만 다 빼버린단 말이여.신경을 꺼 버리랑께.그리고 바다에 몸을 맡겨 버려.바다와 함께 호흡을 하란 말이여"

위험관리의 대가이신 나의 미국인 스승은 또 이런 말을 했다.

"저점매수 고점매도(buy low,sell high)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가격이 내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견해가 아래쪽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점매수 (buying dips)를 외치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같다.

반대로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시장의 대세가 상승쪽이라는 말이다.

이때 고점매도(selling tops)를 논하는 것은 자라는 나무를 짓누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도 자연에 대항해선 이길 수가 없듯이,투자도 시장을 역행하고선 성공할 수가 없다.

교만을 버리고 내몸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

분야는 제각기 달라도 대가들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억누르지 못할 감정이라면 아예 대면을 피하고,허우적거리다 지쳐버릴 파도라면 대항할 생각을 말고,한발 앞서 가려다 실족할 시장이라면 차라리 뒤따라 다니고. 투쟁이 아닌 순종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으라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투자자들은 줄기차게 투쟁의 세월을 살아왔다.

찍고,쏘고,잡고. 때리고,자르고,던지고. 날이면 날마다 포화 가득한 전쟁터를 헤매 다녔다.

고생끝에 낙이 있고 비지땀 뒤에 빵이 생기면 그 수고가 오히려 즐거울 텐데.

그 집요한 싸움끝에 남은 잔해를 보면 허탈하다 못해 멍하다.

이제는 찍기도 두렵고 때리기도 겁난다.

쳐다보기도 지쳤고 기다림도 한계에 달했다.

그만두자니 미련이 남고,계속하자니 더 이상의 고통은 싫고.

그렇지만 힘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자.

이 모든 걸 순종 대신 투쟁을 선택한 대가로 여기고 겸손히 받아들이자.

그리곤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대가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자.

< 김지민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한경머니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