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화사의 전설로 남겨진 스탠리 큐브릭 감독(1928~1999)에겐 흔히 완벽주의자나 비밀주의자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한장면을 1백번 이상 다시 찍기가 예사였고 제작 촬영 편집까지 쥐고 흔들며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예산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도 눈하나 꿈쩍 하지 않았던 큐브릭은 배우들의 "연기력"을 최대로 끌어내며 완벽의 미학을 추구했다.

예술은 "발견의 경험"을 주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내놓는 작품마다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며 성취됐다.

스물세살때 단편 "비행의 날"(51년)로 데뷔한후,"살인자의 키스"(55년),"살인"(56년)등으로 주목받은 큐브릭은 새로운 시각의 반전영화 "영광의 길"(58년)로 독자적인 세계를 확고히 했다.

"스팔타커스"(60년)를 끝으로 뉴욕에서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로리타"(62년)에 이어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63년)로 명성을 높였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68년)는 독창적이며 실험적인 SF영화의 걸작으로 대단한 호응을 얻었고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시계태엽장치 오렌지"(71년)를 내놓기에 이른다.

공포영화의 걸작 "샤이닝"(81년)과 "풀 메탈 자켓"(87년)을 끝으로 예술적 은둔기에 들어간 그는 99년 자신이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고 만족해한 "아이즈 와이드 샷"의 최종 완성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아쉬움을 더했다.

"큐브릭은 연출의 최고 거장이었다. 그는 절대로 남의 작품을 베끼지 않았고 우리 모두는 그의 작품을 모방하느라 급급했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고백은 시대적 거장 큐브릭 감독의 위대함을 간명히 드러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