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퇴진] '바이코리아 신화' 주역...향후행보 촉각
그의 거취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몇달간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너무나 간단하다.
자신을 둘러싼 세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AIG와의 이면계약설 등 잡음이 나오자 퇴진을 조기발표했다''는 얘기만 역시 소문으로 나돌았다.
이 회장은 IMF체제가 낳은 풍운아다.
IMF체제 ''덕''에 명성을 얻었고 IMF가 강요한 기업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순식간에 그 명성을 잃었다.
이 회장은 한때 주식전도사로 불렸다.
IMF체제라는 암담한 환경에서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바이코리아''의 깃발을 앞세워 주식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기업들은 싼 값으로 자금을 끌어들여 빚을 갚아나갔다.
경제는 이렇게 되살아났다.
여의도에는 ''이익치 주가''라는 말이 나돌았고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익치 신드롬''이 퍼졌다.
그는 한국자본시장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동시에 IMF체제를 극복하는 데 공헌한 1등공신으로 부상했다.
그는 그러나 화려한 영광만큼 큰 상처도 입었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으로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당했다.
현대투신 부실문제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현대그룹의 내분에도 원하든 원치않든 그는 한가운데에 있어야 했다.
이 와중에서 가신(家臣)이라는 봉건시대의 직함도 따라붙었다.
이익치 회장을 따르는 현대증권맨들은 그의 퇴진이 실패한 경영 때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이유에서 물러나는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이 회장은 현대증권을 국내 1위의 증권사로 키우는 능력을 발휘했다.
퇴진 직전에는 외자유치를 이뤄냈다.
또 증시가 다시 살아나는 데 그의 역할이 참으로 컸다는 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익치 주가''는 구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절하하는 이도 적지 않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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