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가 국무회의에 보고한 62개 기금에 대한 평가결과에 따르면 기금운영의 방만함이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 왔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국가예산의 2배에 달하는 각종 기금이 중복·낭비되고 주먹구구식으로 관리돼 기금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것은 물론이고 필요성이 없어진 기금도 해당부처가 존속을 고집해 버젓이 살아남아 있는 사례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기금은 일반예산과는 달리 국회심의를 받지 않는데다 기타기금의 경우 국회에 기금운영계획 조차 보고할 필요가 없어 방만한 운영이 이뤄질 소지를 항상 안고 있어 왔다.

또 각 부처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일반예산보다는 주머니 돈처럼 쓸 수 있는 기금을 선호하게 돼 한번 생긴 기금은 그 목적이 달성돼도 없어지기는 커녕 기회만 있으면 그 규모를 늘려온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기금운영 규모가 매년 급증해 지난해 기금운영 규모만 해도 1백97조원에 이르고 이중 중앙관서 장의 승인만으로 확정하는 기타기금이 78조원에 이른다는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기금운영의 방만함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없는 지적이 있어 왔는데도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는 이제 자기 스스로의 평가에 의해 문제점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이를 정비하는데 더이상 미적 거려서는 안된다.

우선 독립된 기금으로 유지할 필요성이 적은 대부분의 사업성 기금은 일반회계나 특별회계로 전환하고 유사기금은 통폐합해 통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금의 수와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2003년까지 기금수를 55개로 줄이겠다고 밝히고는 있으나 그때까지 기다릴 일도 아니고,기금 수자 몇개 줄이는 일보다는 전체 기금규모를 줄여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불가피하게 존속시킬 필요가 있는 기금의 경우에도 기금운영의 적합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예외없이 기금운영 계획을 국회에 보고토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재원조달에 있어서도 수익자부담 원칙에 충실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한편 자산운용에 있어서도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도록 운영체제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함은 물론이다.

기금은 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자율성을 주고 있을 뿐이지 국민부담 측면에서는 일반예산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부처이기주의나 자율성을 빌미로 방만한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면 이는 시급히 시정돼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를 외면한채 언제까지 방만한 기금운영을 방치만 하고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