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 성균관 의대 교수 / 의료관리학 >

정부는 서울 4곳 등 전국에 모두 27곳의 지역거점병원을 지정하고 23일부터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등 의료인력과 장비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의료계는 파업주도세력인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구속자석방 등을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등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수와 의대생들도 연대투쟁에 나선 데다 교수들 또한 집단행동에 나설 태세여서 대형병원의 진료차질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형병원들의 진료차질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말 여야 총수의 합의대로 약사법이 개정되었는데도 의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 불신이다.

정부는 이를 단순히 의료계의 오해로 간주해 일방적으로 설득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의료체계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그 원인 제공자가 서로 상대방이라고 믿고 있다.

의료보험제도의 시행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불신은 의료체계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1977년 의료보험이 시행될 당시 정부는 의료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행위 보험수가를 관행수가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책정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순응했던 이유는 일반수가가 적용되던 비보험 환자의 진료비 수입으로 보험진료비 수입 손실분을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장제도''가 시행됐지만 정부는 의료행위 보험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보험진료비 수입 손실분을 보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의료계는 정부의 묵인 아래 ''약값마진''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정부가 고시한 보험약값으로 보상받는 제도 아래서 약품의 구입가격을 낮추는 만큼 ''약값마진''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약값마진''은 과다한 투약을 조장하여 의약품의 남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의사들에 의한 직접투약과 약국에서의 전문의약품 임의조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의약분업을 시행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료계가 그동안 누려왔던 ''약값마진''은 의약분업 시행으로 사라지게 되어,외래환자들에게 필요 의약품만을 처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약값마진이 남아 있는 약국에서의 의사처방 조제와 일반의약품 판매에 약값마진이 부정적 영향을 미칠 소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약값마진''을 박탈당해 보험진료비 수입 손실분을 보전할 길이 막막한 개원의들이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음을 정부는 이미 파악하고 있다.

또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미래의 개원의로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약값마진''이 사라진 만큼 진찰료 등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수가를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개원의가 의료행위 진료비 수입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어야 의료체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것이다.

적정수준으로 일시에 조정하기 어렵다면 현 정부의 집권기간동안 보험수가를 몇회에 걸쳐 얼마씩 단계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의료대란은 20여년전 의료보험이 도입될 때 ''예정''돼 있었다.

의료대란을 종식시켜야 할 책임을 진 국민의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걱정한다면,채찍보다 당근을 사용해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서 상호 불신을 풀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바람직한 의료정책 대안들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정상화시킨다면 그 업적은 개혁정책의 성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제 의료계도 감정적 대응보다는 이성적인 처신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정부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고 타협하는 열린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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