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1995년 겨울,유덕종씨 가족에게 찾아온 두번째 역경은 그들로서는 가장 심각한 것이었다.

외동딸 주은이가 아프리카에서는 아주 드물게 발생되는 뇌염에 걸렸던 것이다.

유덕종씨는 그때를 회상했다.

"여기에서 살게 되면서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자주 껴안게 됩니다.

어느 날인가 주은이가 제 품에 안겨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군요.

약을 먹이고 괜찮으려니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았어요.

피검사를 해보니 분명히 말라리아 증세는 아닌데 말라리아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말라리아 치료약을 먹였는데도 구토까지하며 더 심해지더군요.

그 당시 이 나라에 뇌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내 생각으로는 뇌염 같았어요.

그래서 함께 근무하는 독일의사와 의논했지요.

그가 저의 의견에 동의하더군요.

바이러스성 뇌염이 아니면 뇌염에는 특별한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아내가 많이 울었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부인이 말을 이었다.

"주은이가 심하게 아픈데도 의사인 아빠가 링거주사를 놓는 것 외에는 달리 취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저는 의학면에 일단 무식하니까 답답하지요.

그러니까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혼자 울 수밖에 없었지요"

부인이 말을 끝맺자 유덕종씨가 말을 이었다.

"병이 심할 때 제가 며칠을 주은이와 같이 잤지요.

뇌의 호흡중추가 상해서인지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더군요.

그 당시 호흡이 언제 멎을지 몰랐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온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때 주은이를 보며 중얼거렸지요.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라고요"

진성구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이성수의 편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역이 혜화역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철역을 나와 서울대 병원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뮤지컬의 희곡을 쓴,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와 개막공연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이성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표까지 그에게 전달되도록 조치하였으나 개막공연이나 공연 후 있었던 축하연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섭섭했던 터였다.

"지금 어디 있어?"

진성구가 물었다.

"서울 변두리 여관에서 전화하는 거야"

"왜 개막 공연에는 오지 않았어?"

"꼭 가보려고 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어"

"나도 섭섭했지만 미숙이는 더 섭섭했을 거야"

진성구의 말에 이성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밤 나를 만나려면 서울대 병원으로 와.지금 그곳에 입원해 있는 혜정이를 만나러 가는 중이야"

"그렇게 할게.여기서 떠나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릴 거야"

"그럼,한 시간 후에 병원 정문 앞에서 만나…혜정에게 유덕종씨 부인 역을 맡으라고 부탁해보려고 해"

"혜정씨는 아프리카를 좋아할 여자야.잘 설득해봐"

이성수가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