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때로는 실수도 하게 되고 약점도 갖게 마련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을 보더라도 클린턴과 닉슨은 결정적인 실수로 탄핵의 위기에까지 가게 됐는가 하면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부인한테 자주 손찌검을 한다해서 ''버펄로의 야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행정부를 스캔들과 부패로 얼룩지게 했던 하딩 대통령은 신경쇠약증세까지 보였었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행태가 대체로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과는 달리 전문가들의 실수나 약점은 보통사람들에게 오히려 애교로 보이거나 위안이 되기도 한다.

축구하면 생각나는 차범근 선수도 패널티 킥에는 좀 약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성이 착해서 골키퍼와의 정면대결에서는 위축감을 느끼곤 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가운데도 실수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다.

캐나다 출신의 제이컵 바이너(Jacob Viner)는 경제학의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세웠을 뿐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 등 우수한 제자들을 많이 키워낸 학자다.

기업의 비용곡선에 관해서 그림까지 동원해 가며 쉽고 조리있게 설명했기 때문에 지금도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그의 설명방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이 문제를 연구할 때 그는 단기평균비용곡선들의 가장 낮은 점들을 이어 나가면 장기비용곡선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중국인 제도사한테 이런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주문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된다는 대답이 나왔다.

한동안은 제도사의 실력을 의심까지 했던 바이너는 한참 후에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됐다.

지금은 경제원론만 공부한 사람도 알고 있는 내용인데 생산설비가 고정돼 있는 단기에 있어서는 최소비용이 되는 지점도 설비규모가 변하게 되는 장기에 가면 더 이상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됐던 것이다.

그는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비용곡선에 관한 설명을 고쳐나갔다.

이런 일화들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은 현 정부가 경제정책상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다소 인색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 당국이 위기탈출과 경제 사회의 개혁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고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었음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책상의 실수와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위기 직후의 고금리정책, 제일·서울은행 문제의 처리, 대기업간의 사업교환을 강요한 빅딜정책, 부실기업에 대한 임시구제책인 워크아웃제도, 대우사태에 대한 대응과 금융불안 등은 그 결과를 두고볼 때 대체로 실패한 시책들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잘된 측면만 내세우거나 당시의 불가피했던 상황만을 강조하면서 반성과 문제해결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규모 공적자금을 추가로 조성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급선무인데도 정부는 그간의 공적자금 운영상 실책이 드러날까봐 국회에서의 논의나 동의를 기피한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지 2년반이 되는 지금은 마라톤의 반환점에 해당하는 시점이다.

후반기가 더 어려운 것은 마라토너에게나 정부당국자에게나 마찬가지다.

전반기의 실수를 반성하면서 현재의 에너지 스태미나 주변환경 등을 정확하게 점검한 후 과욕없는 목표를 세워 정진해 나가야 할 때인 것이다.

개혁구호를 외쳐대기만 해서 국민들을 혼란시키는 것보다 실수와 능력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한 후 당초의 개혁정책중에서 임기내 실현가능성이 있는 시책들부터 골라 집중적으로 추진해 가는 것이 현 정부와 우리경제 모두에 유익한 정책방향이 될 것이다.

(후기: 바이너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이 생긴 이듬해인 1970년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1962년에 이미 그보다 더 어렵다는 F A 워커 메달을 받은 바 있다.

미국경제학회가 5년에 한번씩 수여하는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과 함께 ''지성인으로서의 정직성과 대담성'' 때문이었다고 후배 경제학자인 메이커럽이 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