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 / 공법학 >

마침내 겨레의 만남이 이뤄졌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젊고 화려한 해후는 아니었다.

늙고 오래된,기막힌 상봉이었다.

빛바랜 사진속의 사람들이 걸어 나오듯 어머니와 아들,남편과 처,형과 아우들이 만나 서로 부둥켜 안았다.

자비를 모르는 세월 탓에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주름진 얼굴과 얼굴들이 이제서야,청춘을 다 보낸 뒤에야 만난 것이다.

천형도 아닐진대,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분단의 고통이 그렇게 깊었다.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생이별의 고통 속에 남아 있다.

1천만 이산가족 가운데는 노령자들이 많다.

60세 이상 이산 1세대가 69만명,여명을 가늠하기 어려운 70세 이상이 26만명으로 추정된다.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하려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만남이 감격스러울수록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도 크다.

이번에 상봉의 기회를 얻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기대반 근심반으로 지켜보고 있는 소이이다.

다행히 이산가족의 상봉이 일회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 하다.

당분간은 감격이 지속될 것이다.

감격과 눈물의 퍼레이드가 해빙의 분위기를 띄워 나가리라.''역사적''''획기적''''감격과 눈물''등 감격시대를 형용할 어휘들을 충분히 준비해야 할 일이다.

준비해야 할 건 그 뿐이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감격적인 일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도록,서로 누구에게도 지나친 부담을 초래함이 없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계속 지탱될 수 있도록 채비하고 마련해야 한다.

우선 이산가족문제의 지속적 해소를 위한 제도화가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는 이번 8·15 남북 이산가족 교환 방문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이산가족들이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이산가족면회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남북합의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산가족면회소를 통해 남북한 이산가족이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남북한 사람들 사이의 ''작은 통일''을 통해 나라의 ''큰 통일''로 가는 길을 여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산가족의 상봉을 제도화·상례화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교환방문행사가 몇 차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도 있고 해서 북측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교환방문행사엔 시간과 노력, 비용등 적지않은 부담이 따를수밖에 없다.

방문규모가 커지거나 횟수가 빈번해질 수록 재원조달도 만만치않게 될것이다.

사실 이번 교환방문의 경우에도 비용부담이 어떻게 되는지,정부가 북한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부담하게 돼 있는지,특히 남측 이산가족의 본인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등 궁금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론 분단의 물꼬를 트는 대역사에 웬 돈타령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이런 상봉행사가 계속되거나 면회소를 통한 만남 등과 같은 형태로 발전되는 경우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물적·제도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이 심금을 울리는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필요하다면 한시적으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뒷받침하기 위한 특별법과 기금을 만들어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인도적 문제 해결을 위해 협동한 한민족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획기적으로 확대되리라는 기대가 무성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길을 당당히 가려면 남북 주민이 수긍하고 남북 모두에 득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통일이란 민족대의를 내세워 경제논리를 배제하는 듯한 태도는 남북 모두 도움이 안된다.

북한도 경제논리를 무시하려는 데서 벗어나야한다.

남측 기업에 이윤동기의 유보를 요구할게 아니라 스스로 기대하듯이 그들 또한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이득을 얻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또 그것을 보장해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생의 원칙,이것은 비단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남북간 교류협력과정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