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시장의 ''논리적 블랙홀(black hole)''로 여겨지던 일본의 제로금리가 1년6개월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일본 국내는 물론,해외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이 지난 11일 제로금리를 포기,하루짜리 콜금리를 0%에서 0.25%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즉각 "일본경제의 회복이 취약한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금리인상을 강행한 건 일본경제에 도움이 되지않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론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 재무부도 "지난4월 선진7개국(G7)이 워싱턴에 모여 일본의 제로금리는 세계경제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데 모두가 공감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부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일본경제가 지난 1·4분기 중 0.7%의 성장을 시현했다는 점을 들어 금리인상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의 성장은 부풀려진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 IMF와 유럽,그리고 미국의 주장이다.

"분모(分母) 역할을 하는 99년 경제가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난 1·4분기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됐을 뿐 아니라 올해는 윤년으로 하루가 늘어난 만큼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이런 비판을 의식,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는 "이번 금리인상이 긴축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기술적인 미세조정(technical correction)''에 불과하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하야미가 말하는 ''미세조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금리인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고 이같은 불합리한 현상이 계속될 경우 일본경제 당면과제인 구조조정과 리스크를 평가하는 시장 논리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번 금리인상은 일본경제를 제로금리라는 모순(矛盾)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하야미 총재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소신이 행동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번 금리인상이 더 큰 ''정치게임의 소산''이라는 주장도 많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중앙은행도 대장성의 시녀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비판을 수용, 일본은 98년 일본은행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과연 오랜 관행을 깨고 일본은행이 독자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하야미 총재가 "일본은행법 3조는 통화정책이 일본중앙은행의 고유권한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고 강조한 대목은 중앙은행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와 금리인상의 ''경제외적 동기''를 대변한 것이란 해석이다.

서방언론이 이를 ''금요일의 반란''으로 표현한 건 물론이다.

한발 더 나아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가장 정교한 사무라이의 결행(act of finest samurai)''이라고까지 썼다.

일본은행이 모리 총리는 물론,대장성과 경단련 기업 경제학자뿐 아니라 외국의 비판까지도 기꺼이 감내해낸 것이다.

금리인상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아직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시장은 이번 금리인상을 소 닭보듯 평온히 넘겨버리고 있다.

우리 나라로서도 그리 큰 손해날 일은 아니다.

일본 금리인상은 엔고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우리상품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손익계산서는 일본은행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법을 베끼기만 했다.

내친 김에 또 한번 베끼는 용기야말로 창조적 모방일지 모른다.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