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의 송악산은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한 산이다.

고려 왕궁 만월대는 여인의 젖가슴 바로 아래 있었다.

고려 왕조는 이 여인의 젖을 먹으며 왕업을 이어왔는데,풍수가의 말에 따라 이성계가 여인의 음부 위치에 집(목청전)을 지어 송악을 임신시킨 탓에 젖줄이 말라 고려가 멸망했다고 한다.

북한에 전해오는 풍수설에 얽힌 고려의 멸망 이야기다.

고려 5백년 왕도였던 개성은 경주나 서울 못지않게 수많은 전설과 유물 유적이 남아 있는 신화 속의 도시다.

궁궐터인 만월대,이성계의 집터였던 목청전지,그가 왕으로 등극한 수창궁은 터만 남았다.

9세기초에 쌓은 나성과 나성 안에 축조한 반월성 등도 부분적으로 보존돼 있다.

특히 반월성의 남대문은 1393년 창건된 국보급 문화재다.

남대문의 문루에는 한국 5대 명종 중의 하나인 연복사종이 걸려 있다.

고려 태조릉,공민왕릉,의종의 희릉,충렬왕비 제국공주의 고릉도 유명하다.

북한의 토박이 향토사학자 송경록씨가 최근 서울서 펴낸 ''개성이야기''에 따르면 선죽교,고려성균관,천문관측시설인 첨성대,고려충신 72인의 두문동비도 널리 알려진 문화재다.

불일사,영통사 5층탑 역시 국보급에 속한다.

박연폭포를 비롯 채화동 자화동 부산동 백수동은 명승지로 꼽힌다.

서화담의 사당과 황진이의 묘도 보존돼 있다.

오늘날 개성시는 24개의 동과 3개의 리(里)로 이뤄진 직할시다.

6·25직후 조선식 건물 보존지구로 지정해 만월동 북안동 등 북부 일대는 옛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다.

개성은 지금 대학만도 11개가 있는 교육도시이자 인삼가공업 방직공업으로 이름난 경공업도시다.

서울서 판문점을 거쳐 개성까지 육로관광이 연말 안에 실현될 것이라고 한다.

2만여명에 이른다는 개성출신 실향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을 듯 싶다.

하루속히 육로관광이 실현돼 누구나 베일 속에 가려져 제3의 역사처럼 돼 있는 고려왕조의 유적 유물을 직접 보고 5백년 고려왕조의 문화도 우리 전통문화의 일부라는 생생한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통일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