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에서는 물론이고 국민의 정부에서 시도한 정부조직개편에서 통합대상으로 검토됐던 지금의 산자부,과기부,정통부간 정책적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변인 모양이다.

다만 변한 게 있다면 과거에는 상공부와 과기처가 싸움의 주연배우들이었지만 IT가 부상하면서 지금은 산자부와 정통부가 이를 대신하고,사안에 따라선 부처간 합종연횡이 전개된다는 것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엊그제 산자부가 "부품 소재산업발전특별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1백2개 "부품 소재기술 개발사업"을 공고하자,기다렸다는 듯이 정통부는 IMT-2000을 내세워 핵심부품을 조기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일견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산자부가 공고한 사업에 IMT-2000과 관련된 부품 소재가 다수 포함돼 있고,정통부는 이미 추진중이거나 계획중이었던 것들을 재포장해 "IMT-2000 핵심부품개발계획"을 내놓았던 것이다.

특별법 제정 그 자체가 옳은 발상인지 그른 발상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형식과 의원입법 형태를 검토한 배경에는 부처간 "험난한" 협의과정도 고려됐다는 점에서,향후 국가차원의 부품 소재발전계획이라는 일관된 틀이 제대로 도입될지 장담키 어려울 것 같다.

산자부와 정통부간의 갈등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다.

한때 전자화폐사업을 둘러싸고 산자부와 정통부가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서로가 주도하는 포럼에 기업참여를 유도함에 따라 관련기업들은 혼란에 빠졌다.

가까스로 두부처가 "전자상거래 표준화 통합포럼"을 공동으로 출범시키긴 했으나,세부적 추진단계에서 부처간의 적극적인 협력이 지속될지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아직도 두 부처가 사이버쇼핑몰 등과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별개 기준으로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그런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두 부처는 주문형반도체(ASIC)사업을 두고도 경쟁이 치열했다.

경쟁적으로 동일한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힘을 결집해도 모자랄 판에 힘만 분산시킨다는 소리가 높았다.

요즘 정부가 강조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정부 스스로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보가전분야도 마찬가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정통부가 주도하는 "인터넷정보가전협의회"와 산자부의 "디지털가전산업발전간담회"는 서로간에 무엇이 다른지 모를 일이다.

인터넷정보가전이든 디지털정보가전이든 우리가 집중해야 할 동일한 핵심산업일진대,관련된 전자,통신,장비,콘텐츠,건설업체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를 상황이다.

과거 상공부와 과기처간에는 "기술개발"을 둘러싸고 지루한 논쟁이 있었다.

그때마다 임시방편적으로 정리한 업무 구분이라는 것이 당시엔 언필칭 그럴듯해 보였지만,기술과 산업환경이 급변하면서 매우 불명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산자부와 과기부 역시 갈등이 해소됐다기보다 때만 되면 언제든 불거질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산업의 IT화"를 부르짖는 산자부나 "IT의 산업화"를 부르짖는 정통부나 업무영역 구분이 애매할 수 밖에 없는 융합현상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IT의 누분신 성장을 인정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우리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성과 혁신으로 파급되는 단계에 진입했는지,이에 대해 확실히 그렇다고 단언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중요한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부처간 갈등을 불러올 수 밖에 없는 환경변화속에서 갈길은 먼데 시간이 없는 기업들사이에 "이대론 안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신임 산자부 장관이 부처간 업무영역 갈등과 관련,"기업과 국민을 위해"일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지만,기업과 국민이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특단의 조정기능을 도입하든지 아니면 아예 통합하든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안현실 전문위원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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