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 경희대 교수 / 아태국제대학원장>


근대경제학의 초석을 쌓은 앨프리드 마셜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란 명구를 남겼다.

사회과학 중에서 유독 경제학이 노벨상 수상 대상이 된 건 경제학이 과학적 분석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며,이에 공헌한 학자가 마셜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적 활동을 올바르게 분석하기 위해선 합리적 사고능력이 있어야하며,따라서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뜻한 가슴''은 복지와 관련된 표현이지 시장경제활동에 관한 게 아니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이 공격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과학적 분석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뜨거운 열정으로 사회현상을 보고 있기에 인간활동을 적절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마셜의 지적은 뜨거운 머리로는 인간의 경제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정착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제도개혁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하는 얘기다.

과연 우리는 이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남북관계의 급속한 변화로 미지의 경제·사회환경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온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개혁보다 훨씬 더 어려운 통일에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동시에 의약분업파동,현대사태로 대표되는 재벌개혁의 혼란,노사분규 등 각종 정책혼선과 국내 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나 남과 북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몇십년만에 누가 누구를 만난다느니,국민 건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의사가 폐업해 환자들이 고통당한다느니,재벌 구조개혁을 통해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오너와 가신이 퇴진해야 한다느니,이에 더해 시민단체들은 무슨 운동인가를 벌이겠다고 한다느니 하는 격정적이고 선동적인 내용들이 방송·신문에 비치고 있다.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할 시기에 ''여론몰이''로 문제를 풀어가려한다는 의혹이 저절로 생긴다.

한마디로 ''뜨거운 머리''가 지배하고 있지 않나 싶다.

반지성적 비전문적 목소리만 난무한다.

감정적 대처는 마음의 상처를 깊게 해 치유에 장기간을 요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왜,어떻게,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 각 계층의 민주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다면 적어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실·연고주의 등 우리의 관행은 자유시장경제와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고,교육은 평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의 불평등보다는 빈곤의 평등을 선호할 정도로 ''평등지상주의 사회''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향하고자하는 사회체제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모든 혼돈의 근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 사회체제의 발전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으니,성공적 개혁의 필수요건인 의견수렴이라는 민주적 절차를 밟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4대부문 개혁을 국민에게 제시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시장경제원리와 일관성을 갖기에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가 명료해 국민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을 정권을 수임한 정치세력이 아닌,정부관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정부관리는 나라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기에 보수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의견수렴은 정치권 몫이다.

장관에게 정치와 행정을 동시에 책임지게 한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집권정치세력 때문에,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정부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국민이 나라의 체제와 제도를 수호할 명분과 의지를 갖도록 지금부터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행정부는 경제사회 안정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국민들이 동의하는 합리적인 국가 비전의 개발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운 머리를 필요로 하는 시점이다.

chsk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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