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젊은 주부 A씨의 주식얘기는 평범하지만 너무 솔직해서 감동적이다.

어떤 사연으로 급기야 클리닉을 찾게 됐는지 한번 들어보자.

초등학교 앞에서 남편과 조그만 가게를 하던 A씨는 주식의 "주"자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주식을 하고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손님만 없으면 요때다 하고 방으로 뛰어가는 남편을 보며 점차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남편을 사부로 모시고 틈틈이 묻고 배우며 밤에는 컴퓨터 사용법도 익혔다.

웬만큼 기본이 되자 이제 경제신문을 구독했다.

아침마다 기사를 읽어주고,때때로 남편대신 매매까지 할 수 있게 된 A씨는 더없이 기뻤다.

조금씩 쌓여가는 돈보다는 날로 풍부해지는 지식에 더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A씨를 행복하게 만든 건 소위 "대화의 수준"이었다.

이건 하나에 삼백원이고,저건 하나 팔면 몇십원 남고. 시금치 한단에 얼마고,이달은 전기세가 얼마 더 나왔고.

지겹던 일상의 대화가 어느 날인가부터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나스닥,다우존스,금리인상...

자고 나면 우선 미국경제를 평하고...

위안화 평가절하,일본 엔화강세,국제유가 급등...

세계경제를 논하며 그 파장을 걱정하고...

IMT2000사업,투신권 구조조정,남북경협,금리하락...

생전에 입에 담지않던 용어들을 구사하는 자신이 믿기지 않도록 대견해보였다.

A씨의 말을 그대로 빌면 "주식을 처음 할 때는 너무너무 황홀했다"는 것이다.

거기까지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희 클리닉을 찾아오셨습니까?"

A씨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머리는 꽉 찼는데 배가 홀쭉합니다.

원금을 거의 다 까먹어 버렸습니다"

장이 빠지고 남편이 손실을 보자 자신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마침 입문하던 시점이 장이 반짝할 때라 대접은 처음부터 짜릿했다.

그간 닦은 내공(?)이 헛되지 않았구나 여긴 그녀는 남편 몰래 은행대출을 받았다.

또한 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무공을 과시하며 몇백을 위임받았다.

그리곤 남편계좌외에 은밀히 딴 계좌 하나를 텄다.

하지만 무허가 펀드메니저 A씨에겐 눈꼽만한 두려움도 없었다.

공식대로만 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주가는 요렇게 움직일 거고,저게 저래되면 당연히 어떻게 돼야 하고...

결국 구멍가게가 따분해 뵈던 그녀에게 내린 벌은 70%의 손실,죄목은 "순진함"이었다.

"언니 돈만이라도 회복하면 그만할 텐데...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김에 이제 남편이 모르는 부분은 고백해야 되겠어요. 숨기고 사니까 너무 힘들어서..."

고개를 떨구는 A씨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주식시장은 천하의 천방지축입니다.

수백만 투자자들의 개성이 합쳐졌으니 자유분방하기가 한이 없습니다.

금리가 하락하면 주가가 상승한다고요? 유가가 급등하면 장이 빠진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도식적인 생각때문에 다들 실패합니다.

시장은 제 가고 싶은데로 갑니다.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나 똑 같습니다.

어떤 천재적인 공식도 부인하는 황야의 무법자입니다.

내가 짜 놓은 판에 시장을 맞추고자 하면 안됩니다.

사모님 자신을 시장에 맞춰야 됩니다.

남자들 군대가면 배우는 거 있죠? 군화가 작으면 발을 줄이고,군복이 크면 몸을 불려라.바로 이렇게 하는 겁니다.

내 사이즈를 찾다간 기합만 실컷받고 고문관 소릴 듣습니다"

얼마후 실패담을 얘기하는 TV 인터뷰에서 우연히 A씨의 모습을 보았다.

남편에게 사실을 다 털어놓았는지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날 우리 클리닉 처방을 아직 잊지 않으셨겠지만 노파심에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고 싶다.

주식에서는 머리가 비어야 배가 부르다는 역설의 진리를.

김지민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한경머니자문위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