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벤처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두고 벤처산업 전반의 위기로 보는 시각과 재정경제부의 이례적인 공식 반응처럼 위기는 아니라는 낙관론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위기인가 아닌가.

결론은 황희 정승의 판결처럼 모두가 맞다.

다만 그 대응여하가 논란의 핵심이다.

사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벤처기업 하면 이미 성공을 거두었거나 성공을 눈앞에 둔 알짜기업의 대명사로 많은 샐러리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름도 생소한 기업의 시가총액이 내로라 하는 대기업의 시가총액을 능가하는가 하면 떼돈을 번 벤처기업과 창투사의 재테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잘 나가는 대기업의 중견간부는 물론 촉망받는 관료 엘리트들이 다투어 정보산업분야의 벤처행을 결행해 또 다른 측면의 제조업 공동화(空洞化)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의 5백52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업체의 72%가 위기론에 동의했고 벤처기업위기론으로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업체는 제조벤처의 경우 47.5%가,인터넷벤처의 경우 63.9%가 그렇다고 답해 이 논란이 결코 사회적 흥미거리가 아님을 반증해 주고 있다.

위기론에 동의하는 이유로서는 벤처기업의 수익성저조(25.9%)와 벤처캐피털의 투자기피(14.3%)가 가장 비중이 높았고 경제불안정(13.2%),벤처인프라의 미확충(12.7%),코스닥침체(10.2%)등이 위기론을 확대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첨단벤처라는 간판만으로 공모가부터 적지않게 버블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일부 영악한(?) 벤처기업들은 그 기회를 놓칠세라 불필요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를 발행하여 금년 들어서만 6조원에 달하는 공급물량을 늘린데다 장기 보유로 우호적 관계를 약속했던 창투사나 기관투자가들이 등록 직후 투자주식을 대거 처분,이익실현에만 혈안이 되었던 시장의 비정함도 그 원인의 하나였다.

이렇게 되니 기술개발과 마케팅에만 전념하고 자금조달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이 막상 자금이 필요한 때에 금융기관의 반응은 냉정하고 인력확보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벤처기업들로서는 처음으로 맞이하는 시련이자 구조조정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작금의 상황이 야기된 데에는 벤처의 과잉 홍보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중 하나다.

벤처의 천국이라 할 미국에서조차 벤처의 성공률은 10% 미만으로 보고 있고 그 중에서도 나스닥 등록에 이르는 성공기업은 5% 미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벤처 해서 망했다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고 신데렐라 같은 성공신화만 강조된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기술력이나 마케팅,경영전반의 미숙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평가는 무모하리만큼 과장되었던 측면이 없지 않다.

차제에 증권시장에서의 불건전매매의 관행이 없어져야 하고 벤처기업은 물론 기관투자가 창투사 엔젤펀드 등 시장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지양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벤처기업 스스로 이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는 지혜와 겸허함이 필요한 때이다.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고 사무실에 신문지를 깔고 새우잠을 자면서 밤을 지새던 그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안일한 출세와 영달을 뿌리치고 새로운 세계에 과감히 도전했던 진정한 기업가 정신과 기백은 어디에 있는가.

일천하지만 이 땅의 벤처기업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것이 사실이다.

이들 젊은 벤처기업인은 보이지 않는 신분사회의 질곡을 깨고 산업사회에서는 꿈꾸지도 못할 신분상승의 신화를 창조했고,아직도 놀라운 경직성과 관료주의로 공룡화된 대기업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규격화된 굴종의 거대조직에 반기를 들고 자존과 창조와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벤처기업이야말로 우리경제의 유일한 대안이자 우리사회의 활력의 원천이다.

지금이 바로 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봐주고 등을 두들겨 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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