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래 < 한국외대 교수 / 과학사 >


며칠전 "선생 노릇도 점점 힘들다"는 일선 교사의 푸념을 들었다.

정말 그럴거란 생각이 든다.

원래 선생이 선생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학생들보다 아는 게 많기 때문이다.

교사의 머릿속에 자기보다 지식이 더 많이 쌓여있는 것이 확실해야만 학생은 스승을 깔보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갑자기 컴퓨터가 판치고 인터넷이 생활화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선생이 제자들보다 낫기는 커녕 그들을 따라가기조차 힘들기 일쑤다.

엊그제 일이다.

나는 가을학기 3강좌를 맡는데 과목 안내를 인터넷을 통해 학교 전산망에 입력해야 했다.

두 과목은 입력이 끝났건만 나머지 한 과목은 ''에러 메시지''가 뜨며 입력이 되지 않는다.

밤새 몇차례 실패후 아침에 다시 시작했지만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잘 살펴보니 과제물 마감시간 표시항목에 ''예를 들면''이라며 날짜를 ''2000년12월15일''로 하고 싶으면 ''20001215''로 하라고 적혀 있다.

그제서야 ''12월15일''이라 적었던 것을 ''20001215''라 고쳤더니 입력완료의 사인이 떴다.

도대체 왜 전산실에서는 숙제 제출일표시를 12월15일이라 찍으면 안되고 20001215라 해야 입력되게 만들었을까.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산전문가는 무슨 까닭이 있어서 했겠지 믿는 수밖에 없다.

다른 경우를 보자.그런대로 나는 인터넷을 상용하는 축이지만 인터넷 때문에 지금까지 나의 성적평가 방법은 갑자기 흔들리게 돼버렸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논문이나 레포트를 쓰게 하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자기 실력으로 써내는지 가늠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논문을 보면 때론 그 학생이 모두 연구해서 쓴 것이 아니라는 심증이 갈 때가 많아지고 있다.

의심하자면 그 논문은 인터넷을 헤집고 다니다가 찾아낸 정보를 그대로 ''털도 뽑지 않은채'' 옮겨 재탕해 만든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자고 많은 시간을 들여 인터넷 세상을 이잡듯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그 시간을 들인다하여 꼭 밝혀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에도 학생들 가운데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남의 글을 짜깁기하기도 했다.

또 실력있는 선배나 동료에게 부탁해 얻어낸 경우도 있었을 법하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얻은 정보를 누구 것을 훔친다는 가책감이 전혀 없이 당당하게 베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 선생이 아는 수준보다 더 위에 있을 때도 많으니 그야말로 선생 체면이 말이 아닌 상태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말로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실감나는 이즈음이다.

뒷사람이 나를 앞지르는 것 쯤이야 당연한 인생 이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전혀 의미없는 시대로 가는데야 이를 어쩌랴.이 말은 스승의 교육과 훈도를 바탕으로 제자가 뛰어난 인물로 성장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푸른색(靑)은 쪽(藍)이란 식물에서 추출한 염료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뛰어난 학생들은 선생의 교육과 훈도속에서 뛰어난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 훌륭한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류사회는 ''선생이 필요없는 새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같다.

이제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어 어차피 교사가 청소년들 만큼 시대 변화에 잘 적응할 도리는 없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속을 날고 있다.

최근 한국서도 머리가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다.

오죽하면 내 아내는 "노란 머리도 보기 괜찮더라"고 했다.

나는 아내의 적응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유행에 대한 적응과는 달리 과학기술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그리 빠를 수가 없다.

나이들수록 그 적응 속도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점점 선생이 존경받기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똑같은 이유로 부모 또한 자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소위 지식사회의 발전 덕택에 학교와 사회,그리고 가족마저도 알알이 흩어져 버리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부모와 자식,선생과 제자,정치인과 국민 사이를 맺어주는 유대(紐帶)를 새롭게 만들어 가지 못한다면 세상은 파탄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것이 나는 걱정이다.

parkstar@unitel.co.kr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