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 서강대 교수 / 국제통상 >

모든게 변하고 있는데 대학생들 사이에 고시에 대한 열기는 여전하다.

우리나라는 시험으로 관료를 뽑는 제도를 천년 이상 유지해온,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다.

고려시대의 과거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고시로 이어진 이 제도는 사회의 가장 우수한 인적자원을 경쟁에 의해 직업관료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관료조직은 이같이 오랜 전통을 지닌 소위 고시출신 관료군 외에 두 종류의 관료군이 함께 삼각체제를 이루고 있다.

일선행정기관에서 정책을 집행하며 대민업무를 담당하는 일반관료군과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장.차관급의 정무직관료군이다.

밖에서 보면 모두 똑같은 관료이지만 속을 들춰보면 이들은 각기 다른 역할과 가치사슬을 가지고 있다.

먼저 고시출신 관료들은 선발됐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주로 중앙부처에 앉아 기획과 정책개발을 한다.

이들은 대개 관료로서 두가지 꿈을 갖고 있다.

첫째는 장.차관이 되겠다는 개인적인 출세이며 두번째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화 세계화 등으로 관료조직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하는데 이들은 과거의 영화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군청이나 세무서 등에서 국민들과 접촉하는 일반관료들은 고시출신과 같은 화려한 꿈보다는 차라리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사무관이나 중앙부처의 과장이 돼보는 것이다.

이들을 서글프게 하는 것은 자기능력개발의 기회가 적고 거의 평생을 근무해도 소위 말하는 당상관이 돼 족보에 이름 한번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월급만 갖고 살지 않는 공무원이란 눈길로 쳐다보며 민원인은 한 술 더 떠서 약간 집어주면 먹고 봐주는 만만한 상대로 대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들 두 관료군의 정점에 선 정무직 관료의 역할은 두가지다.

첫째가 대통령의 통치이념과 기업과 국민이 원하는 바대로 좋은 정책이 펼쳐지도록 잘 훈련된 관료조직을 통솔하는 것이고 둘째가 전문관료가 소신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온갖 외부압력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종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인사가 장관에 발탁되고 그러다 보니 평균재임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우수한 관료조직도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고 할 때 나라마다 핵심관료군이 다르다.

우리나라와 같이 엘리트관료군이 국가발전을 주도하는 국가는 일본과 프랑스다.

정무직 관료군이 탁월한 국가는 베트남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같은 선진국행정의 공정함은 정직하고 친절한 일반관료군에서 나온다.

일반관료들이 제대로 안 움직이면 나라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발표해도 국민이 피부로 느끼질 못한다.

고시출신관료들이 흔들리면 21세기 디지털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계속 검증받지 않은 각료가 임명되면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관료조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이 관료조직에 동기부여를 해 열심히 뛰도록 만드냐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관료군을 각기 다르게 다루는 것이다.

첫째 일반관료에게 필요한 것은 청렴하게 열심히 하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꿈을 주는 것이다.

이들의 부정부패는 사정기관보다는 동료사회에서의 따돌림과 질책으로 무섭게 징벌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고시출신관료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자긍심을 찾아 국가발전을 위해 신나게 뛸 수 있는 일거리를 주는 것이다.

흔히 규제완화로 이들이 할 일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눈앞에 닥친 디지털혁명은 그 어느때 보다도 이들의 우수한 기획력과 두뇌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무직 관료는 철저한 검증을 통해 엄선하고 한번 자리에 앉으면 소신을 가지고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들의 공과는 절대로 여론에 의해 즉흥적으로 평가돼서는 안된다.

뜨거운 가슴으로 관료를 끌어안는 소신있는 장관 아래에서 직업관료들이 눈빛을 반짝이고 동네아저씨 같은 공무원이 친절하게 국민을 대하는 관료조직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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