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estate tax)를 폐지하라"

우리나라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을 뜨거운 논쟁으로 몰아넣고 있는 의제다.

하원이 지난 6월 9일, 2백79 대 1백36의 압도적 표차로 ''상속세 폐지''를 결의한 데 이어 상원도 지난달 14일 59 대 39로 같은 법안을 통과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즉각 거부권 행사를 공언하면서 "의회의 상속세 폐지 결의안은 향후 10년간 1천50억달러의 조세수입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무책임하고 역진적(regressive)인 법안이다.

수천만명의 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기대하고 있고 또 다른 수천만명의 노인들이 의료 보조금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천명 정도의 소수 부유층만 살찌울 이번 법안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했다.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도 "상속세의 폐지는 미국재정의 틀을 위태롭게할 뿐 아니라 국가정책 우선 순위를 흔들어 놓고,자선단체의 수입기반붕괴를 불러 올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워싱턴 포스트에 보냈다.

그러자 프레드 스텐거라는 자영업자가 서머스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난하는 반박문으로 맞섰다.

"나의 부친과 어머니는 방 12개짜리 모텔을 구입 하루 16시간씩 주말도 없이 일해가며 당시 50%가 넘던 연방 법인세는 물론 주(州) 법인세, 재산세뿐 아니라 끝도 없는 목록의 세금을 내느라 동분서주해야 했다.

2년전 부친이 돌아가시자 우리는 50%가 넘는 상속세를 또 한번 내야 했다.

아버지와 내가 상속세납부를 위해 미리미리 보험에 들지 않았다면 우리는 회사를 남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과도한 세금을 냈는데 거기에다 상속세까지 더 내라는 것은 이중과세(double taxation)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스텐거씨는 "이 같은 과정을 겪으면 과연 기업은 왜 하느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고 덧붙였다.

데니스 해스터트 의회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가 내놓은 법안제출 명분 또한 "온 가족이 힘써 세워놓은 가족기업과 땀흘려 일궈 놓은 농장을 상속세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사례로부터 납세자들을 구출하자"는 데 맞춰져 있다.

한 공화당의 중진은 "상속세는 주어진 수명보다 너무 오래 살았다.

84년전 상속세가 만들어진 것은 미국 초기산업화시대의 ''악덕 자본가(robber baron)''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제 이들이 없어졌으니 상속세는 관(棺)에 들어갈 때가 됐다"고 말하는 정도다.

조지 부시 대통령후보 또한 공화당의 입장에 동조,앨 고어 민주당후보를 향해 "클린턴이 상속세폐지법안에 서명하도록 촉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재정흑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로 고민중이다.

공화당은 남는 돈을 세금감면을 통해 납세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남는 돈으로 사회보장(social security), 의료지원(Medicare), 교육 등을 보완해야 할 때라고 맞서고 있다.

선거철을 맞아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화당이 상속세폐지, 결혼세 경감(marriage tax relief)등을 무리하게 내놓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물론 정치 공세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속세가 기업가들의 기업의욕을 꺾는 요인"이라는 공화당의 명분론에 적지 않은 민주당의원들이 동조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하원에서는 65명의 민주당의원이, 재적의원 1백명의 상원에서는 9명의 민주당의원들이 공화당쪽에 가담했다.

상속세와 관련,우리는 일부 부유층의 ''부(富) 축적과정''이 깨끗하지 못했다는 선입관에서 출발한다.

이에 구애받을 것 없는 미국은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www.bjGlob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