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엇''인가에 관한 새 이론을 개발하는데 골몰한 나머지 ''왜''우주가 존재하는지를 물을 틈이 없었다.

한편 ''왜''를 묻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철학자들은 과학적 이론의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따라오지 못했다" 이론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그의 말처럼 과거 ''학문의 왕''으로 군림했던 철학을 비롯한 언어 문학 예술 역사 법률 고고학 등 인문학은 지금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르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우리 대학 안팎에서도 근래에 인문학 위기론이 팽배해 있다.

학부제 실시로 인문학 대학원 진학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는가 하면 교양필수과목이었던 국어 한국사 철학개론도 선택과목이 되자 수강생이 반으로 줄었다.

인문학 강좌가 잇달아 폐강되고 있다.

이만하면 교수들이 하소연하는 위기의 실상을 어느정도 짐작할 만하다.

학자양성에 치우쳐 사회변화에 대처하지 못했고 전공을 지나치게 세분화시켜 공동연구의 효과를 외면했으며,인문학의 중요한 책무인 교양교육에 태만했다는 교수들의 자성도 쏟아져 나왔다.

그 대안으로 인문학을 문자에 의해서만 표현하려들지 말고 영상과 디지털을 이용해 확대시키자는 ''표현인문학''이란 생경한 용어도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60,70년대 신문화운동이 휩쓸던 미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그 뒤 연방정부는 거대한 ''인문학 진흥기금''을 조성해 인문학을 지원해오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2005년까지 ''인문학 발전 5개년종합계획''을 추진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두뇌한국21(BK21)''사업이 이공계에 치우친 것을 보완,죽어가는 인문학을 부활시키려는 국가 차원의 대책이다.

이달초 인문학발전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 지원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한다.

인문학 지원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BK21''처럼 아무도 그 실효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연구비 나눠먹기식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

국민이 낸 세금을 쓰려면 무엇보다 인문학자다운 새로운 각성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