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과 경제혁렵 가속화 ]

1974년 한ㆍ불,한ㆍ영 경협위가 본격 활동하자 유럽의 작은 나라들도 꿈틀거렸다.

가장 민첩한 나라가 벨기에였다.

진화론을 쓴 다윈은 ''생물계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공룡같은 강자가 아니라 환경변화에 빠른 적응력''이라고 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베네룩스 3국''은 적자생존의 대표주자라 하겠다.

재빠른 적응력이라고 했으나 국경을 맞댄 독ㆍ불 등 강대국으로 인해 국가존망의 비극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2차대전때 독일은 프랑스 침공때 이들 두 나라를 강점했다.

그래서 ''안네의 일기''같은 유태 소녀의 비극도 일어났다.

유사이래 이 지역은 유럽의 십자로(十字路)였다.

사람과 문물이 교역되는 통로였다.

라인강 등 하구(河口)를 임해공업지대로 개발한 선구자였다.

60년대초 우리의 울산공업단지도 여기서 본떠 왔다.

벨기에는 영국에 이어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다.

벨기에는 오랫동안의 종교갈등 언어분쟁 등으로 1830년에야 겨우 독립했다.

그러나 철 석탄에 의한 기계공업과 농업에 바탕을 둔 면공업 등 균형된 공업화를 불ㆍ독보다 앞서 이룩했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영국으로부터의 인력, 기술도입이 절대적 역할을 했다.

영국은 산업혁명후 2천명이 넘는 기술자들을 유럽 각국에 파견했다.

벨기에를 비롯 유럽 대부분의 철도는 이들 영국기술자에 의해 부설됐다.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벨기에는 나폴레옹 점령하에 있었으나 이 점령은 전화위복(?)으로 벨기에의 공업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

이에 힘입어 유럽대륙에서 최초의 철도가 1839년 9월 브뤼셀을 기점으로 개통됐다.

벨기에의 경제인들과 필자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네 학교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순간, 벨기에 경제인은 어리둥절해 했다.

질문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은 번번이 당신 나라를 전쟁터로 만들었다.점령도 하고 통치도 했다.그에 따른 굴욕과 민족감정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설명하느냐"

그제야 질문의 뜻을 헤아린 모양이었다.

"우리 벨기에는 작은 나라요,약소국 사람이 사려없이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소.부적절한 감정을 표시하면 이웃 강대국의 오해나 침공의 빌미를 줄 따름이오.우리나라에선 유치원에서부터 남과 이야기할 때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는 ''감정자제''훈련을 하고 있소.이것이 지난 수백년동안 강대국의 북새통에서 배운 교훈이라오"

내가 지금까지 간직해 온 역사관과는 동떨어져 침묵을 지킬 수밖에.

''애국심,조국애,침략자에 대한 증오,민족주의 기백.이들 원초적 감정을 유럽 약소국가들은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몇 년전에 읽은 일본 여류 역사소설가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 떠올랐다.

작가 시오노는 ''미국은 전쟁에 패한 경험이 없다.싸우면 이기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그래서 월남전이 끝난지 10년이 되는데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사람들,작은 나라들의 전쟁관은 사뭇 다르다.

''오늘은 어쩌다 졌으나 다음에는 이길 수도 있겠지''

이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심정을 당분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前 전경련 상임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