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은 없고 특히 생이별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고 적었다. 이어서 ‘까짓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사는 결별쯤이야 고통이라고 할 게 못된다’는 말로 생이별의 처절함과 기막힘을 표현했다.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지쳐 아련한 추억속에 묻었거나 냉전이데올로기의 서슬때문에 월북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숨죽인채 살아온 사람들이다.

어느쪽이든 희미한 기억속에 멀어지기만 하는 모습을 누렇게 바랜 사진 한장에 억지로 붙들어뒀을 것임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북한측에서 알려온 사람 가운데는 맏아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50년동안 이사하지 않고 같은집에 살아온 노모가 있는가 하면 50년을 기다리다 두달전에야 실종신고를 한 사람도 있다는 보도다.

어느것 하나 눈물겹지 않은 일이 없거니와 신혼초 헤어져 생사조차 모른채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온 아내들의 사연은 더욱더 가슴을 저민다. 더욱이 이런 형편도 모른채 북쪽남편이 부모와 형제만을 찾는다는 소식은 분단의 비극이 얼마나 뿌리깊은지를 새삼 일깨운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만날수 있는 사람은 낫다.

북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며 평생 혼자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인술을 베풀다 작고한 장기려박사의 일은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거니와 반세기를 기다리다 두세달전 세상을 떠난 이들도 많다. 비극의 여지는 또 있다. 뻔히 찾는줄 알면서도 월북자가족이라는 지난날의 족쇄가 두려워서 혹은 새삼스런 상봉이 가져올 부작용이 무서워 쉬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임옥상의 작품가운데 ‘6.25후 김씨 일가’라는 것이 있다.

기념사진이라도 찍는 듯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을 소재로 한 이 그림엔 군데군데 얼굴이 지워진채 허옇게 형체만 남은 사람들이 있다. 2000년 8.15후 김씨 일가중 잃어버렸던 형상을 되찾게 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