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전만 해도 서울은 전원도시였다.

지금의 종로5가 부근에는 장이섰지만 파고다공원 근처는 온통 채마밭이어서 부추꽃에 날아드는 나비들의 모습이 제법 운치가 있었고 원각사 흰 대리석탑만 죽순처럼 우뚝 서 있었다는 유득공의 시를 보면 그렇다.

그로부터 1백여년 뒤 서울에 왔던 미국 선교사 조지 길모어는 해질무렵 성곽과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봉화를 보고 자기가 "아더왕의 법정에 선 양키"같다고 적어 놓았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조용한 은자의 나라" 수도 서울의 옛모습이다.

하지만 서울은 지금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메가로폴리스의 표본이다.

콘크리트 덩어리인 고층건물과 아파트숲 사이로 뚫린 아스팔트 길위를 1초라도 먼저 가려는 1천4백여만대의 자동차들이 누비고 다닌다.

푸르름은 도시의 거친 면모를 부드럽게 한다지만 서울엔 녹지도 태부족이어서 시민1인당 녹지면적은 0.2평 밖에 안된다.

한마디로 서울은 현대사회의 미덕인 기술과 속도를 자랑하며 1천여만명이 "빨리 빨리"를 목표로 살아가는 살벌한 도시다.

어디 서울뿐인가.

한국의 도시는 개발과욕으로 조용함이나 여유를 잃은지 오래다.

이탈리아 투스카니,움브리아지방의 그레베시 등 33개 소도시가 지난주 "느린(slow)도시"를 만들기로 선언했다고 한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공해없이 조용하게 움직이는 전기버스를 늘리며 고층건물도 짓지 않을 방침이다.

또 이 지역재배 농산물만 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과거로 되돌아 가자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의 쓸데없이 바쁜 요소를 배제해 느릿느릿하고 조용하고 여유있는 삶을 즐기겠다는 것이다.

"나중 꿀 한 식기보다 당장 엿 한 가락"에 혹하는 것이 한국인이고 "쇠뿔도 단김에 빼야"속이 시원하며,그래서 조금만 기다리라면 "손주 제삿상 기다리기"라고 속단하는 것이 우리라지만 "불난 집에 덴 소 날뛰듯 할때"는지났다.

서울은 어쩔 수 없다해도 물 불 가리지않고 서울닮기에 나서고 있는 지방도시의 조급한 개발정책을 보면 답답하기만 한 터에 이탈리아 "느린 도시"조성 계획의 철학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우리가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 잃은 것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