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 서울대 교수 . 공법학 >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국민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집단폐업을 결행하던 의사들의 단호한 표정,그 우국충정을.

아니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어째서 정부와의 싸움 때문에 숨을 할딱이는 환자가 방치돼야 하는지,아픈 아이를 업고 이곳 저곳을 헤매던 어머니가 절망과 분노에 떨어야 했던 까닭이 무엇인지,아무리 생각해도 양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우리 사회의 대표적 전문직 "의사선생님들"이 삭발을 하고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국민 여러분"에게 "당신들은 모를,그들만의 벙어리 속타는 마음을"호소하던 그 광경은 법조인,교직자,약사 등에 이어 결국 마지막 남은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존경의 토대를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말았다.

지난달 여.야 영수회담으로 극적 타결의 기미를 보이더니,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의료계와 약계의 대립이 다시금 재연,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각자 대규모 궐기대회를 열어 맞대결을 펼치고 "극한투쟁 불사"의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의료대란이든 약사대란이든 또다른 위기가 올까 전전긍긍하는 서민들의 낯이 어둡다.

답답한 일이다.

의약분업 당위성과 선진국 성공사례를 들먹이면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왜곡된 의약분업"은 결사반대하는 이들 전문직의 분규,그리고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졸속과 오만으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한 정부의 행태,정부로부터 뜨거운 감자를 받고 어설픈 타협으로 문제를 신속히 종식시키는데만 급급했던 국회의 태도,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의 낙후된 갈등관리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국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단연 눈에 띄는 민주화의 성공사례로 통한다.

광주항쟁 등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어찌됐건 늦게나마 민주주의로 다가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사회적 갈등과 분규를 소화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은 형편없이 뒤쳐지고 말았다.

갈등관리를 위한 제도화의 수준 역시 사회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면 한참 낙후되어 있다.

국가기구,정부가 져야 할 가장 큰 책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공익을 대표하는 이들 국가기구들이 사회적 분쟁에 있어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손꼽히는,인기직종 최상위를 누렸던 이들 전문지식인들이 드러내 보인 민주적 소양의 빈곤과 언제라도 합의를 뒤집을 수 있는 예측불허의 협상문화에 있었다.

정책추진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거나 반영할 기회를 부여함에 있어 이해 당사자간의 형평이나 결정기간 등에 문제가 있었던 점은 정부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국회가 소관 상임위원회를 거쳐 약사법개정안을 통과시키는데 대해 반대하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대해서도 극한투쟁을 감행한다면,과연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국가기구와 법제도가 설 곳은 어디인가.

전문직 지식인들이 그러한 공적 의사결정과정을 단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거한다면,그것이 시민불복종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면 몰라도,결코 용납할 수 없는 직업적 오만이 아닐 수 없다.

집단폐업이라는 막가파식 행태는 우리 사회의 최고지성을 대표하는 의약전문직의 오만과 편견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손상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우선 직업민주주의부터 살려야 한다.

의료계와 약계 모두가 약사법개정안의 수용불가를 외치고 있다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불만요인이 있음을 뜻한다.

그러니 이제 다소 자신의 손해가 더 크다 하더라도 신중하게 처신하기를 바란다.

중지를 모아 대표를 뽑고 그 대표위임을 존중하는 태도,정책결정과정에 민주적 룰에 따라 적극 참여한 후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우리가 존경하는 의사와 약사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극약처방을 남용하면 약효는 커녕 반발과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그것은 곧 파멸의 길이기도 하다.

집단휴업은 국민을 볼모로 잡는 더욱 더 나쁜 방법이다.

정부 역시 심기일전하여 의약계의 처지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여 제도개선을 위한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 홍준형 joonh@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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