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경문화의 흔적은 대략 기원전 10세기께 청동기시대부터 나타난다.

그 시기에 쌀이 재배되고 있었다는 것은 유적지에서 나온 탄화된 쌀의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이나 토기편에 찍혀 있는 벼의 흔적이 말해 준다.

전국 20여곳에서 출토된 탄화미 가운데 여주 흔암리 청동기 집자리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기원전 7세기께 것으로 밝혀져 이미 그무렵에는 쌀농사가 보편화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지난해는 사상 처음 울산 무거동 옥현에서 7세기께 논유적도 발굴됐다.

논산 마전리유적에서는 웅덩이 수로등 관개시설까지 갖춘 5세기께 계단식 논이 발굴돼 고대 한국 쌀경작법의 우수성을 드러냈다.

중국에서는 아직 논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여러 논 유적이 발굴되기는 했어도 고작 기원전 4-5세기를 넘지 못한다.

한국에는 4세기 무렵에 이미 철제 농기구와 우경(牛耕)이 보급돼 있었다.

대전 괴정리에서 출토된 기원전 4세기 "방패형 동기"에는 보습을 사용해 밭을 가는 사람이 새겨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쌀 생산이 국가적으로 장려됐다.

세금도 쌀로 받았다.

귀족들은 쌀밥을 주식으로 했다.

고려에 오면 인구가 증가하고 쌀 선호도가 높아져 한때 쌀이 화폐구실도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떡 술 등 1백여가지의 쌀 가공식품까지 나온다.

2-3년만에 한번씩 짓던 쌀농사를 매년 짓게 된 것은 11-14세기였고 모심기가 시작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70년대 통일벼 육종에 성공해 식량의 자급자족은 물론 쌀 수출의 시대를 맞기도 했으나 8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한국의 쌀농업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겨레와 3천여년을 함께 해 온 쌀은 단순한 식량만이 아니라 생활 언어 문학 예술 종교 영역에 구석구석 배어들어 민족의 생활과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5일부터 쌀과 관련된 고고 미술 민속자료 1천여점을 모아 특별기획전을 연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한국사를 공부하는데 이처럼 좋은 기회도 없을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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