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독재정권시절, 독재의 하수인들은 학계의 정부비판에 대해 대안없는 비판을 하지 말라고 윽박질렀었다.

이는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정부안을 거부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할 책임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살며 국민에게 최선의 봉사를 할 의무가 있는 정부에 있지, 학계나 국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마땅찮은 정책을 거부하고 대안을 요구할 권리를 가질 따름이다.

더욱이 정부는 비일비재하게 공공(public)을 위한 정책이란 미명하에 국민보다 자신이 속한 이익집단인 공공집단(public group)을 위한 정책을 공공정책(public policy)이라고 내세우는 수가 있다.

이때 그 공공정책이 진정 공공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공공집단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을 분간할 능력이 국민에게는 충분치 못하다.

이를 분간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전문가뿐인데 교수는 가장 훌륭한 전문가다.

따라서 교수는 정부를 비판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를 가진 존재다.

이같은 권리.의무 관계는 "국민의 정부" 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최선의 정책을 개발하여 국민에게 봉사할 의무는 민부(民富)의 4분의 1 이상을 수용(收用)하고 있는 정부에 있지, 혈세로 정부를 유지.부양하고 있는 국민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교수도 엄연한 국민중 한사람일 따름이다.

그런데 얼마전 문제가 됐던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의 정부비판사례의 경우는 어떨까.

필자는 학계와 출연 연구기관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연 연구기관을 부양.유지하고 정책과제를 발주하는 주체는 정부다.

따라서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의 1차적인 선택은 정부라는 고객의 주문에 응할 것인가 여부가 된다.

만일 고객의 주문내용이 도저히 학자적 양심과 전문가적 판단이 허락하는 것이 아닐 경우,그런 주문은 받지 말아야 한다.

이 경우 최악의 사태는 자신이 연구기관을 떠나든가, 연구기관 자체가 문닫는 것이 될 수 있다.

정부의 주문내용이 본질적으로 자신의 학문체계 및 학자적 양심과 합치되는 경우 무리 없이 연구와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정부가 바라는 정책목표 A가 국리민복에 합치될 수 있고, A를 달성할 정책수단으로는 a가 최선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이 때 정부가 a를 거부하고 이를 b로 바꿀 것을 고객입장에서 요구하는 수도 있다.

이 경우 연구를 수행한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정부가 바라는 정책수단 b가 a보다 분명 못한 것이지만, A라는 정책목표달성과 관련해서는 오십보.백보가 아니라 오보.십보 가량의 정도차일 경우다.

이럴 때는 교수와는 달리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은 b에 만족하고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는게 필자 생각이다.

그러나 b가 수단으로서의 효율성에서 떨어질뿐 아니라 합목적성에도 어긋나 b로써는 절대 A란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때 출연 연구기관 연구원은 끈질기게 정부당국자를 설득, b 대신a를 택하게 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효율성에서는 크게 뒤지나 합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a''를 개발하여 이를 선택케 하는 길이다.

최선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끝내 b를 고집하고 a''마저 거부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때 출연 연구기관은 b란 정부정책수단이 A란 정책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합목적성을 결여하고 있음을 정보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분명히 알려줄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1차 고객인 정부에 대한 것보다는, 정부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궁극적으로 봉사해야 할 지고(至高)한 존재, 궁극적 고객인 국민에 대한 의무가 앞서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판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관용은 자신(自信)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인데, 필자는 적어도 우리 경제관료는 그만한 자신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부는 또 관용을 베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안제시를 비판과 혼동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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