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 소설가 ji2958@hitel.net >

나에게는 1년에 한번쯤 실컷 우는 날이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위 아래로 챙겨야 하는 어른과 아이가 있는 처지에 맘대로 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눈물샘이 막혀버렸나 싶을 정도로 삭막한 감정으로 살아가는데,그러나 이상하게도 K선생을 만나는 날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동안 묵혔던 울음이 줄줄이 흘러 나온다.

울고 싶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내 몸이 운다고 해야 할까,내 안의 또 하나의 내가,내 혼이 운다고 해야 할까.

선생앞에서 내가 무슨 대단한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누는 "대화"란 것이 몇 마디 되지도 않는데,선생은 하염없이 나를 울린다.

선생은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순간부터 나를 되돌아 앉히시고 무엇인가를 하시는데,아마 손바닥으로 내 등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거울처럼 비치고 있는 모양인데,나는 전신의 힘을 그 알 수 없는 행위에 서서히 맡겨버린다.

2,3분,길면 5분 정도 그렇게 앉아 있는데,나는 나를 놓음과 동시에 내 안에서 급격하게 내 몸의 찌꺼기란 찌꺼기가 몸 밖으로 밀려나가는 변화를 체험한다.

고백도 대낮에 맨 얼굴로 하기 차마 부끄러운 것인데,눈물 행사라니...

울어버린 얼굴로 선생과 마주앉자니 여간 민망하지 않다.

사실 그 민망함이 거북해 지척에 살면서도 의당 자주 찾아뵙고 인사올려야 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 1년에 한두 번 발을 뗄 뿐이다.

그러나 그 벼르고 별러서 찾아 뵙고 울고 나오는 순간부터는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워져 걸음에 붕붕 리듬이 실린다.

눈물만큼 자신을 투명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흥건하게 눈물진 얼굴로 선생댁을 나오면서 생각해 본다.

선생은 누구인가.

선생은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아는 선생은 평생 당신이 아닌 주윗 사람들의 고통을 표나지 않게 뒤에서 짊어진 분이다.

선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등 뒤에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그 자리를 빌어 내 안의 나와 마주앉도록 주선하신 것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 있는,그러나 가장 먼 데를 헤매이는 나를 제도하는 선생은 보살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