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호는 "프린스" 모텔 지하로 내려가 비상 계단을 이용해 369호실에 들어갔다.

침실로 들어가 들고 온 서류봉투를 꺼내 침대 옆 탁자 위에 놓고 탁자 위 스탠드불만 켜고 방을 컴컴하게 했다.

그런 후 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15분 동안 기다릴 예정이었다.

진성호는 신발을 신은 채 침대에 누워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갔다.

그는 눈을 감았다.

정동현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정한 것은 아내가 호텔 주차장에서 사고를 당하기 전 호텔방에서 정동현과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황무석을 통해 안 후였다.

의식불명인 아내가 의식회복이 가능하다는 가정하에서 정동현이 한 짓에 상응하는 벌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만약 아내가 영원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식물인간이 된다면 정동현에게 어떤 벌을 내리게 될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자 역시 의식을 영원히 회복하지 못하도록 할 것 같았다.

남편이 입을 치유 못할 마음의 상처를 고려하지도 않고 유부녀를 멋대로 주무르려는 자는,아무리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현재의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당연한 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진성호는 확신했다.

그것만이 남편이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어느 정도나마 치유하는 길이고,한번 상처입은 남자의 자존심은 치유하지 않으면 자신감을 잃게 돼 인생의 낙오자가 되게 운명 지워진다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진성호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을 나와 옆에 있는 불꺼진 욕실로 들어갔다.

"문 열려 있어"

진성호가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반말로 문닫힌 욕실 안에서 말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어느 새끼가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세븐스타 술집 기도인 스포츠 커트를 한 젊은이의 장난기 섞인 음성이 들렸다.

"어떤 새낀지 모르지만 이 돈 다시 돌려 받을 생각은 하지 마"

그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침실로 들어가,불은 켜지 말고.곧 나갈 테니..."

진성호가 욕실에서 다시 말했다.

잠시 동안 조용하더니 그자가 침실로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침대 옆 탁자에 서류봉투가 있어.그 봉투를 열어봐"

진성호는 그렇게 말한 후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자가 봉투 속의 내용물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상상하며 그자에게 돈의 유혹이 먹혀들어갈 여유를 주었다.

그런 다음 진성호는 문닫힌 욕실 안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어떤 아주머니를 통해서 전한 돈 300만 원과 지금 서류봉투에 들어 있는 돈 2700만 원을 합치면 3000만 원이야.그 돈은 당신 거야. 당신은 나를 몰라.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야.나도 당신의 외모만 봤어.어디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 이외에는 당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진성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를 보려고 하지 마.보지 않는 것이 좋아.나를 보게 되면 일은 끝장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