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시장의 힘이 관치를 허용치 않을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관치금융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시장논리가 제 기능을 하는 사회가 정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은행에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고 그 주인이 제 역할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치가 정부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관습의 영향도 크기에 경제주체 각자가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는 충고도 내놓았다.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이 나라는 국민들이 정부로 하여금 관치를 요구하는 나라"라고 일침을 놓는다.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조급증이 관치금융이란 폐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좌 원장은 "정부정책은 법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국회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낙관적인 것은 이제는 정부가 아무리 관치를 하려고 해도 시장을 이길 수 없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관치금융 종식은 법에 앞서 시장의 힘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이윤호 원장은 "관치는 굳이 금융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걸쳐있는 사회적 관습의 하나"라며 칼로 자르듯 단번에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지난 60년대 민주화와 시장경제 수준을 지금과 비교하면 굉장히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시장의 붕괴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정부 개입은 불가피하겠지만 그 경우에도 수혜자의 이득을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행장 인사와 관련, 손 위원은 "은행장은 철저히 장사꾼이 해야 한다"며 "공공기관 출신이 은행장을 맡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경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은 기업과 달리 소유규제 때문에 제대로 된 주인이 없었을 뿐 아니라 주주 역시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그 공백을 틈타 관치를 행사할 여지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있는 주체가 은행내에 존재하는 것이 관치금융 철폐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대주주가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이 좋은 예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외국인 주주뿐 아니라 소액주주들도 무서워하도록 하려면 집단소송제도와 같은 수단을 다각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이사는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개입은 당연하지만 과거 지나치게 개입을 남발한 탓에 정작 필요할 때는 정부의 힘이 먹혀들지 않는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매로 다스린 아이는 나중에 때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선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의 금융 감독기관도 민간에 개입하는 경우가 알게 모르게 많이 있다"면서 "문제는 금융선진국의 경우 정부개입이 시장논리를 존중하는 방향인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미국 출장길에서 월스트리트 직장인들이 지하철에서도 업무관련 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을 보고 소름끼칠 정도로 놀랐다"며 "관치에 속수무책이었던 금융인들 스스로의 자기성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