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2개 은행의 경영진을 보면 정부관료나 금감원 한은 출신 은행장이 거의 절반인 10명이고 감사는 무려 15명에 달한다.

정부가 환란이후 은행을 상업적인 금융회사로 키우겠다던 방침과는 달리 관출신들을 대거 들어앉힌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관 출신 행장에겐 "장사꾼" 기질보다는 아무래도 정부와의 교감을 기대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관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또다른 요인이다.

정부와의 교감이 발휘되는 대표적 사례가 금리조정이다.

지난 2월초 시중은행들간에는 대우채권 환매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져 금리가 오름세를 보였다.

이에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과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잇따라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과도한 수신경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정부시각을 전달했다.

이 한마디에 각 은행들은 며칠 뒤에 곧바로 금리인하에 들어갔다.

은행마다 사정이 다를텐데도 정부측에 자기 은행의 상황을 설명해가며 예금유치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려 노력한 은행장은 없었다.

물론 정부가 은행경영에 시시콜콜히 간섭하는 것은 아니다.

남상덕 금감위 조정협력관은 "정부-은행간 양해각서(MOU)를 맺어 인사 경영에 비교적 자율성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강륭 조흥은행 부행장은 "과거처럼 대출압력 등의 관치금융은 없다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영"은행들에게는 심리적인 "족쇄"가 작용하고 있다.

국영은행 경영진은 정부나 금감원이 주재하는 대책회의에 나가 제대로 발언도 못한다.

한빛은행은 경영난을 겪고 있으면서도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에는 앞장 서 총대를 맸다.

BIS비율 걱정에도 불구 채안기금과 채권펀드에 가장 큰 돈을 낸 곳도 한빛은행이다.

또 대우 12개사중 당초 대우전자 대우전자부품에다 제일은행이 버린 (주)대우 대우통신 다이너스카드 등 5개사의 워크아웃을 떠맡았다.

한 실무자는 "강한 내부 반발에도 임원들이 힘 한번 못쓰고 받아왔다"고 꼬집었다.

최근의 은행파업때 한빛 조흥 서울은행 노조가 끝까지 버틴 것도 국영은행으로서의 이같은 족쇄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이들 "국영"은행들은 외국계은행이 된 제일은행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제일은행은 정부의 풋백옵션(추가 부실채권 매입약속) 덕에 추가 잠재부실이 제로다.

채권투자펀드에도 한푼 안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은 금융의 국영화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오는 9월말까지 국영은행과 독자생존이 어려운 은행의 경영정상화계획을 받아 타당성 여부를 가려낼 방침이다.

이 시험에서 떨어진 은행은 정부에 처분을 맡겨야 한다.

벌써부터 17개 일반은행중 적어도 6~7개 시중.지방은행들이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돼 국영화 길을 밟게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금융권도 이미 국영화된 대한생명 한국투신 대한투신 대우증권에다 3~4개 종금사까지 예금보험공사 자회사로 편입되면 국영회사 판이 된다.

대한민국은 "국영공화국"이란 소리가 나올 법하다.

기왕에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은행지분도 2002년 하반기 이후에야 매각한다는게 정부 방침이다.

앞으로 2~3년 더 국영은행의 족쇄가 채워진다는 얘기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