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 < 소설가 ji2958@hitel.net >

"수국을 아시나요"

요즘 내가 인사 대신 건내는 말이다.

연일 "열대야"다 "오존주의보"다 해서 마음 놓고 숨조차 쉴 수 없는 우리의 머릿속에 잠시라도 수국의 시원한 파란 물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수국요?

어떻게 생겼더라...?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하는데,어제는 나보다 더 수국에 푹 빠진 어른을 만났다.

경주에 가면 불국사는 물론이고 남산아래 조약돌처럼 퍼져 있는 말사들 그늘에 청초하게 피어 고요히 마당을 밝히는 수국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매년 몇 차례 경주행을 하던 것을 올해에는 지금껏 미루고 있던 차에 최근 제주도에 갔다가 다시 수국과 만났다.

그 전에 이런 저런 계기로 여러번 그 섬을 찾았지만,수국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룹 여행이어서,아니면 다른 색다른 볼거리들에 마음을 빼앗겨서 발치의 잔잔한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는지 몰랐다.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자동차를 빌려서 소 천엽 뒤지듯이 지도 위의 섬 길을 모두 쑤시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도 같은 길을 달렸을 터인데 눈에 잡히는 풍광은 사뭇 달랐다.

그 길들 위에 수국이 있었다.

수국은,경주와 함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종횡무진 넘나들던 길 위에 잊혀졌던 연인처럼 홀연히 나타나서는 이륙하는 순간까지 함께 했다.

그 중에서도 비내리는 서귀포 가도,쉴새없이 내리쏟는 빗줄기 속에 탐스런 꽃 몸을 후들후들 떨고 서 있던 수국을, 돌아와서도 며칠째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어제 만난 그 어른은,이심전심이었던지 수국 이야기가 나오자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달고는 말없이 내 손을 끌고는 베란다 쪽으로 갔다.

푸른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길 가를 지키던 수국이 "드라이 플라워"가 되어 항아리 가득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질리도록 바라 보다 퍼렇게 꽃물이 들었던 내 가슴은 그만 그 자리에서 멍이 든 것처럼 얼얼해졌다.

마르기 전에는 두 팔로 안을 수도 없었을 그 풍성한 꽃들을 비행기로 어떻게 운반했을까도 의문이었지만, 가는 길마다 차를 세우고 한송이 한송이 남몰래 꽃대를 훔쳤을 그 분의 경지를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멍일지언정 수국과 함께 한 밤이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