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외환위기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던 IMF와 우리정부와의 경제정책협의가 지난 6월의 제11차 협의를 마지막으로 종결되었다.

이를 두고 우리경제가 IMF체제를 명실상부하게 졸업했다거나 IMF 신탁통치가 끝났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경제 훈수꾼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IMF를 사범 자격을 가진 훈수꾼으로 본다면 한국정부는 실제 바둑을 두는 대국자의 한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이 대국자는 기리에 벗어난 무리한 바둑을 두어왔다고 하겠다.

자기 약점은 돌아보지도 않은채 집을 넓히거나 상대방 돌을 잡는 데만 열중하다보니 근거(재무구조)가 취약해지거나 축머리도 살피지 않고 돌을 몰아가는 위험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어가면서도 상당기간 동안은 승승장구해 왔었는데 97년 늦가을에 ''''해외금융''''이라는 강적을 만나 불계패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기사회생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IMF였고 그때부터 이 훈수꾼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이 심했던 것이다.

훈수꾼이 간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시원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섭섭하고 불안하다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IMF의 참견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필요이상의 고통을 받은 점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그 덕분에 이익집단들의 반발을 누르고 어려운 구조조정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으며 어느 정도 성과도 올렸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훈수꾼이 떠난 후에도 계속 우리의 바둑이 무리수 없이 순탄하게 두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회복이 빨랐던 경기가 차츰 진정되어 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까지는 아직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무역흑자축소 자금경색 의료대란 금융파업 등 때마침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주고 있다.

불안감의 근원을 찾아가 보면 두가지 의문점에 맞닥뜨리게 된다.

먼저 아직도 현정부가 IMF와의 합작품인 개혁과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계속 추진하고 실현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총선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작년 연말부터 한동안은 정부가 개혁에 힘을 쏟지 않고 초기 개혁의 성과만을 강조하고 즐길 뿐이었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선거 후 새삼스럽게 고삐를 당겨보려는 시늉을 했지만 이익집단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개혁의 피로감 운운하며 움추려들고 있다는 비난의 소리도 높다.

그런가 하면 김대통령의 경제에 관한 기본 철학, 자민련의 보수적 입장, 경제관료들의 변함없는 권위의식 등 상충되는 요인들이 그간에는 IMF체제라는 강력한 장막속에 묻혀 왔지만 그것이 걷히고 나면 본색들이 드러나서 불협화음과 경제의 혼미상태가 두드러질 것이라는 걱정들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불안감의 또 한가지 근원은 정부가 의지는 있다고 하더라도 구조조정을 계속 추진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금년에 들어오면서 정부당국자들은 자주 말을 바꿈으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 왔다.

반면에 그들이 상대해야 할 이익집단들은 숫자와 세를 엄청나게 불려나가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IMF와 정부의 연합전선에 밀려 고통을 참고 숨을 죽여왔던 집단들이 이제는 맹렬하게 이기심의 추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을 잃은 정부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이익집단간의 싸움에 대다수 국민들은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채 불안에 떨고만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감이 확산되어 또 다른 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급선무이다.

훈수꾼이 없다고 해서 움추려 들 필요는 없는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암수나 무리수를 두어서도 안될 일이다.

개혁의 의지를 다시 가다듬고 여론이나 인기에 흔들림 없이 원칙과 약속을 지켜나감으로써 잃었던 정책신뢰도를 되찾고 남은 개혁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겨우 살려 놓은 바둑을 또 망쳐서 훈수꾼을 다시 찾는 일 만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