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社會 이대론 안된다 - ''기업/금융구조조정 처방 이렇게..'' ]


남덕우 전 총리는 "최근 경제 불안은 구조조정을 다루는 메커니즘이 바로 서 있지 않은데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

환자(부실기업과 금융기관)는 집(자산)을 팔아 입원비(구조조정비용)을 조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주주와 채권은행 및 정부는 서로 치료비 부담을 떠넘기려고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이라는게 그의 진단이다.

또 주치의(정부)는 뚜렷한 원칙없이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다 보니 대증처방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연요법(시장기능)을 통해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이 추진될 수 있도록 법을 비롯한 기존 절차를 재정비해야 한다는게 그의 처방이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산학협동재단 이사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남 전 총리를 고광철 경제부장이 만났다.

남 전 총리는 경제전반의 구조조정을 의사(정부)가 환자(금융기관 및 기업)를 치료(구조조정)하는 과정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 만난 사람 = 고광철 < 경제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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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파업을 둘러싼 노정(勞政) 갈등으로 금융불안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노정 모두 한국경제의 안정을 위해 파국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국경제는 지금 두 부류의 전염병 환자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실 기업들이고 다른 하나는 부실 금융기관들입니다.

원래 금융기관은 기업들의 위생관리를 맡아 보는 곳입니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기업이 병들고 지신도 중병을 앓게 됐습니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등 주치의들 사이에서도 요즘 의약 분업 분규와 같이 영역 다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주치의 처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의사의 치료법은 대증요법(규제)도 있을 수 있고 자연 요법(시장경제)에 중점을 둘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가지 개혁입법을 통해 은행과 기업에 건강수칙을 마련해 줬고 성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치의가 말로는 정부 간섭을 없애고 시장경제의 자연 치유력에 의존한다고 하면서도 주위의 독촉에 밀려 수시로 나타나는 병상에 따라 단편적 대증요법을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


-주치의가 대증요법을 남발해 병을 키우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급한 대로 규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시장경제의 기능을 살려가려는 열의를 보여야 합니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예로 들어 보죠.

정부가 은행의 대주주가 됐지만 경영과 인사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민간 주주들에게 일임하는 아량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개혁에는 그러한 솔선 수범과 지도력이 중요합니다"


-주치의의 처방에 원칙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의사(정부)가 너무 많은 환자를 동시에 다루다 보면 한쪽 환자에 게 눈을 팔다가 다른 쪽의 환자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조조정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행권 구조조정에 정신을 쏟다보니 시중자금이 투신권으로 대거 이동해 부실의 씨가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투신쪽에 메스를 대니 이번엔 투신권 자금이 은행으로 이탈했습니다.

투신의 회사채인수 여력이 고갈돼 신용 경색이 일어나고 건전 기업들이 비명을 지릅니다.

사전에 병의 전염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예방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치료비 문제도 논란거리입니다.

"부실기업의 주주 채권은행 정부 사이의 손실 분담에 관한 원칙(rule)이 확립돼 있지 않습니다.

서로 손실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각축 속에서 기업의 매각과 처분이 늦어집니다.

그러는 사이에 은행과 기업의 부실 상태는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환자의 형제들이 치료비 부담을 놓고 서로 미루다가 시급한 수술의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처방을 제대로 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데요.

"우리 주치의는 IMF(국제통화기금)의 권고에 따라 기업의 건강기준을 부채비율 2백%이하, 은행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이상로 정해 놓고 단시일 내에 이 기준을 충족하도록 독려해 왔습니다.

물론 미국 기준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의 건강 기준이 미국사람의 그것과 꼭 같아야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환자의 체질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병세가 같아도 이를 치유하는 약의 처방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직접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업들은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은행들은 오랫동안 관치금융에 순치돼 방만한 대출을 일삼아 왔습니다.

평균 5백% 내외의 부채비율을 예사로 여겨 왔죠.

그런데 갑자기 부채 비율을 업종과 관계 없이 단시일 내에 2백%까지 낮추라고 요구하니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은행들이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기업 돈줄을 죈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BIS 비율 8%는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지난 88년 미국과 영국의 금융전략에서 비롯된 정치적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 비율을 단시일내에 충족하라고 요구했을 때 당시 은행들로서는 대출을 회수하는 길 외엔 다른 방법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극심한 금융경색이 일어나고 부실 기업뿐만 아니라 건강이 양호한 기업들이 부도의 비운을 맞게 됐습니다.

BIS 비율 8%와 기업의 부채비율 2백%가 한국의 외환위기를 금융위기로, 다시 경제위기로 치닫게한 마(魔)의 숫자라는 일부의 지적은 그래서 나옵니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도 겉도는 모습입니다.

"한 민간 연구소 통계에 의하면 98년 이후 워크아웃 등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47조원의 금융기관 신규 부실이 발생했답니다.

제2차 금융 구조조정이 막 시작됐는데 또 다시 금융경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에 경험한 것처럼 "금융기관 부실 증가->신용 축소->자금경색 확산->부도 증가->금융기관 부실 증가"의 악순환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문제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건실(健實)에서 부실(不實)을 도려내고 구조조정과 부실 사이의 악순환을 단절하느냐 하는데 있습니다"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어떤 처방을 써야 합니까.

"환자가 병원에 모여 있으면 나머지는 건강 사회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와 건강한 사람이 뒤섞여 있으면 사회전체가 병들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은행과 기업 한두곳이 병들면 다른 쪽도 병들게 마련입니다.

또 병이 무고한 기업과 은행으로 전염되기도 합니다.

환자를 격리시키지 않고 부실기업과 은행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경제 전체가 부실하게 보이는게 현실입니다"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놓고 치유가 가능한 환자인지 아니면 불치병 환자인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처치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의사는 죽어가는 환자와 가족과 친척들의 고통을 가급적 덜어 주는 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환자 가족들의 애원에 못이겨 얼마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보면 시간과 치료비 낭비에 불과한 대책입니다.

어차피 살릴 수 없는 기업이라면 이해 관계자들의 반대가 있더라도 과감히 퇴출시켜야 합니다.

도산과 관련된 법적 절차의 미비점을 보완해 퇴출을 쉽게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입니다"


-구조조정 방법에 대한 논란도 많습니다.

"구조조정의 논리적 순서와 소요시간을 무시한 성급한 동시 공격이 구조조정을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 것 같습니다.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면 필요한 조치는 일단 끝난 것입니다.

치료기간을 놓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치료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실은 환자를 다루는 방법과 과정이 문제입니다.

병원 직원들은 주치의들의 치료방법에 반대해 총파업을 계획하고 국내외의 여론은 구조조정의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고 야단들입니다.

결국 부실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다루는 메커니즘이 확실하게 서 있지 않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시장기능을 통해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기존 구조조정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합니다"


-부실채권 처리도 난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병든 은행과 기업의 중환자를 격리시킬 병원이 없습니다.

자산관리공사가 있다지만 이 기관은 죽어 가거나 병든 환자의 유산을 정리하는 기관이지 환자 자체를 수용해서 치료할 능력은 없는 곳입니다.

정부는 IBRD(세계은행)의 권고에 따라 부실기업을 매수해 치료하거나 제3자에게 팔아 넘겨 돈을 버는 민간회사(CRV)의 설립을 유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민간 회사들이 많이 나타나서 제구실을 하게 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

그래서 정부 한국은행 금융단 국제금융기관 등이 공동 출자하는 지주회사, 가칭 "기업갱생공사"를 세울 것을 제안합니다"


[ ''기업갱생공사''란 ]

"부실기업을 시가로 매수한 뒤 경영진을 선임해 구조개선을 추진합니다.

은행의 매각 손실이 확정되면 그로 인해 은행 자본비율이 떨어지므로 그 시점에서 일차로 공적 자금을 투입합니다.

구조조정 계획이 타당시되면 채권 금융기관은 인수기업에 대한 채권의 일부를 출자로 전환하든가 대출기한을 연장해 줍니다.

새로운 경영진은 보다 안정된 재무상태에서 기업경영을 개선하게 됩니다.

경영이 정상화되면 금융기관은 주가가 상승한 주식을 매각해 금융기관의 채권을 회수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자본주와 경영주체가 기업을 인수하는 결과가 됩니다"

정리=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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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1924년 생
<>국민대 정치학과 졸업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제학 박사
<>국민대.서강대 교수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위원
<>제24대 재무부 장관
<>제12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대통령 경제특보
<>제14대 국무총리
<>국정자문위원
<>한일협력위원회 회장
<>한국무역협회장
<>산학협동재단이사장(현)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현)
<>주요저서 : 경제학사, 가격론, 통화량의 결정요인과 금융정책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