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IMT-2000 사업자 선정안이 확정됐다.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사업자 수, 선정방식, 표준 문제에 대한 사업자 선정 주체인 정부의 입장이 정해진 것이다.

표준 설정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서류 심사제를 근간으로 3개의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과거 이동통신사업자 신규허가 때마다 선정의 공정성 시비로 얼룩졌던 전력 때문에 현 정부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어느 때보다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서류심사제의 본질적 한계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하는 사업자의 정치공세에 한바탕 휘말릴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문제의 핵심은 표준설정을 기업의 자율에 맡긴다는 입장 표명과 상반되는 정부의 언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IMT-2000 서비스를 고대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공간적 제약을 초월한 글로벌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를 통일하는 단일 표준안이 합의되지 못하고 동기식과 비동기식 두개의 상반된 표준으로 분리된 지금, 글로벌 서비스에 대한 보통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질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나라의 사업자들이 동일한 표준을 선택하는가에 좌우되게 됐다.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누가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2차적 관심사다.

과거 제2이동통신사업자 허가, PCS 사업자 허가 때, 정부는 CDMA라는 특정한 단일 표준을 조건으로 사업허가를 내줬다.

이번 IMT-2000 사업자허가에서 정부는 국제규범과 통상마찰을 고려,표준문제는 기업의 선택에 맡긴다고 했다.

정부 간섭이 배제되고 기업의 진정한 자율만이 표준선택 결정을 지배할 경우 모든 기업들이 비동기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비동기식이 실질적 세계 표준이 될 것이고, 동기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만큼 협소한 시장을 상대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논리를 반영하여 실제로 출사표를 던진 모든 기업들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명백하고 단호한 어조로 비동기식을 선호함을 표현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이들의 뜻대로 비동기식을 결정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기업들이 비동기식으로 통일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비쳤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정부는 자율에 맡긴다고 하면서도 배후에서 표준문제를 조정하려고 하는가.

먼저 국내 제조업체의 강력한 반발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부 국내 제조업체들은 기술개발 경험과 축적을 이유로 동기식이 채택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비동기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국내 장비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또 비동기식을 선택할 경우 막대한 추가적인 망 구축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동기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동기식을 선택하든 비동기식을 선택하든, 원천기술은 실질적으로 모두 외국기업에 있다.

따라서 한국기업들은 기술사용료 협상을 해야 하는데 한국정부가 인위적으로 특정기업에 특정표준을 강요한다면 기술사용료 협상에서 한국기업들은 아무런 협상력을 갖지 못할 것이 뻔하다.

만약 모든 사업자들이 비동기식 표준을 채택하는 경우, CDMA 신화가 퇴색되고 정부의 기술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매도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정책당국이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기업이 비동기식을 선택하는 경우 동기식의 주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퀼컴이 미국정부를 등에 업고 강력한 통상공세를 전개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업의 진정한 자율적 선택이 방해받는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기업의 의사에 반하는 표준조정의 대가는 고스란히 이용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우려가 높다.

통신서비스의 존재 이유는 고객 때문이다.

<> 필자 약력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예일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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