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진성구는 자신의 시선이 도시의 한 곳에 머물고,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 있고,가로수와 하늘을 향해 이었으나 실제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머리만이 미친 듯 회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위기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그리고 또다른 위기를 만들어 그 짜릿한 긴장감 속에 자신과 자신의 주위 사람을 가두어두기 위해...

그래서 그가 자의로 갇힌 감옥 속에서 숫자가 지배하는 세계를 이루어 숫자로 숨쉬고 숫자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면서 숫자에 목을 베어 횡사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 일생을 보내는 삶...

그것이 바로 그가 과거에 산 삶이었다.

황무석과 통화한 후 그러한 삶에 자신도 모르게 또다시 끌려들어 갔었음을 진성구는 깨달았다.

진성구는 그러한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택시가 세브란스 병원 현관에 도착했을 때 진미숙이 그곳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어?"

진성구가 택시문을 열며 말했다.

진미숙이 아무 말 없이 택시에 올라탔다.

그녀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사고 났을 때 순간적으로 여러 번 호흡이 중지되었나봐요. 그래서 뇌세포가 산소부족으로 손상을 입어 의식 불명상태가 되었대요"

"회복 가능성은?"

"가능성은 있대요. 경과를 더 두고봐야 하지만..."

진미숙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진성구는 복잡한 서울거리를 달리는 택시의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어쩌면 당분간 성호 대신 내가 회사를 운영해야 될지도 몰라"

진성구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진미숙의 다급한 질문에 진성구가 시선을 거두어 진미숙을 보았다.

"대해실업에 주가조작이 있었고 성호가 아무래도 관련된 것 같아.고발을 당하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는 회사경영에서 손을 떼야 할 거야"

"주가조작은 왜 했대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이유가 있었겠지.그렇지만 성호가 이익을 챙기려고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진성구가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아까 뵈었던 서대문 경찰서 이 형사입니다. 지금 잠깐 뵈었으면 하는데요"

"무슨 일인데요?"

"몽타주를 보시고 혹시 아시는 사람인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요"

"누구의 몽타주인데요?"

진성구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사고 당시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정동현이라는 텔레비전 사회자가 룸에 있었습니다. 이정숙 교수도 그 방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방송국 직원이라며 어떤 남자가 프런트에 정동현씨가 있는 방번호를 물었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정동현씨 방문을 열려고 했었는데 그자가 방번호를 물은 자로 추측됩니다. 그자의 몽타주를 확인하려고요"

"지금 사무실로 와요. 내가 그리로 가고 있으니까요"

진성구는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