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서 < 고려대 교수 / 경영학 >

지난주 금융경제부문의 주된 뉴스는 기업의 자금난 등 금융시장의 신용경색현상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조치들에 관한 기사였다.

한국경제신문은 사실보도와 함께 "경제가 더 급하다"라는 시리즈와 사설 등을 통해 정부의 미봉적인 금융시장대책들을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논조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일관성이 없는 금융구조조정정책, 이로 인한 각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집단이기주의 현상, 경제팀 내에서의 불협화음 등에 관한 기사들은 현재의 금융시장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관련기사들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는 충실한 반면 대안의 제시부분에 이르러서는 심도있는 논의를 보여 주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금융기관들이 신용이 확실하지 않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유인을 갖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 신용을 제공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이란 나름대로 신용평가에 기초, 위험에 상응하는 이자를 요구하면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기능을 가진 기관이다.

그런데 이를 포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금융기관 자신이 충분한 재무적 건전성을 갖고 있지 못한 가운데 기업에 대한 여신이나 유가증권의 매입은 재무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인수합병 등 금융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재무건전성의 악화는 치명적이다.

이를 막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 바로 기업에 대한 여신기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그동안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했으나 충분치 않았다는 것인데 필자는 그 원인을 금융부문보다는 기업부문에서 찾고 싶다.

경제는 항상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있다.

불황기를 버텨내는 힘은 기업이 쌓아온 내부적 또는 외부적 자금조달 능력에 달려 있다.

우리의 기업들은 아직도 수백%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어 금융비용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높으며 이는 바로 신용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의 자기자본이라는 완충자본이 충분할 경우 채권자인 금융기관과 시장은 이자와 원금에 대한 회수에 별다른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우리 기업들을 무슨 수를 쓰든지 부채비율을 1백50% 이내로 끌어내리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자기자본조달이 어렵다고 변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이라도 팔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원래 의미의 기업구조조정이다.

현재 상황이 신용경색에 의한 위기라는 것을 뒤집어 해석하자면 우리의 기업들이 능력에도 없이 과도한 투자(보다 엄밀하게는 비효율적 투자)를 하고 있고, 이에 소요되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과도한 부채를 끌어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몇가지 정책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성장률을 좀 낮춰서라도 기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자는 조금 더 올라가야 할 것이며 통화공급의 고삐는 조여져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는 금융기관들에 채권펀드를 인수토록 강요하기 이전에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은행 등 여신금융기관을 건전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자기자본 형태로 공급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추가적인 여신을 통해 부실요인이 발생해도 여전히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할 정도로 말이다.

현재는 예금이라는 부채성 자금만 증가하고 있어 은행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정부의 공적자금투입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이 국유화된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정부에게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정부는 유동성 제공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야지, 금융기관의 주인이 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는 우리의 은행이 어떻게 망가져 왔는가를 통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다.

셋째, 모든 공적 자금의 조달은 국회를 거침으로써 투명성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문제점은 금융정책 입안자 또는 금융감독기구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회 등이 금융정책의 입안 등 모든 과정에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물론 국회의 전문성 강화를 전제로 한다.

넷째, 금융부실의 책임은 정부와 감독당국, 관련금융기관, 투자자 등이 나눠 부담할 필요가 있다.

투신사가 고객계정으로 보유하고 있는 부실 대우채권의 경우 현재는 모든 책임을 투신사와 판매대행사의 주주들에게 돌리고 있는 바 이는 이들 기관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투자자와 금융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

차제에 간접금융중심의 금융산업구조를 직접금융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강구함으로써 경제전반의 위험이 소수 금융기관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

다섯째, 금융기관간 인수합병은 단기적인 대안이라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돼야 할 사안이다.

선진국에서의 자율적인 금융기관간 합병도 그 성공률이 50% 미만이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정 합병을 유도하려면 대등한 기관간 합병보다는 절대적 우위에 있는 금융기관이 열위기관을 흡수합병토록 유도하는 것이 차라리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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