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제는 언제나 한국인에게 풀기도 어렵고, 풀지 않을 수도 없는 숙명적 과제로 존재해 왔다.

이것은 동족 안보 이념 경제 등 거대한 의미를 가진,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가적 명제를 담은 과제다.

정치적 민주화나 경제구조의 개혁은 어렵고도 복잡했던 문제지만,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보여준 과거의 주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남북 문제에 관한 한 오늘날까지 실질적 진전을 보인 것은 하나도 없다.

2l세기들어 이것이 가장 심각한 국가사회의 과제로 대두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의미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6.13 방북성과는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만 하다.

그러나 거국적 흥분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열기만큼이나 빠르게 식는 냉각,그리고 여의치 못할 때 나타나는 환멸과 매도의 사태를 불러올 위험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북한을 고찰하는 것은 심연을 응시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과 관련한 각종 통계수치나 자료는 거의가 다소간의 추측과 의도성이 동원됐다.

그 색깔이나마 본다면 1990년이래 북한의 산업생산은 절반에 이르도록 하락했고,현재의 공장시설은 20%만이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까지 이어진 식량기근으로 인구는 3백만명 이상 줄어들고,생존한 인구의 60%가 전 세대보다 왜소화됐다고 전해진다.

작년에 6.7%의 경제성장률을 보였다는데,그 이전 8년간 연 마이너스 4.3%의 속도로 국내총생산이 줄곧 감소했으니 이제 기술적 반등이 나타날 때도 됐다.

북한 경제가 물론 항상 이러했던 것은 아니다.

전후 60년대 초까지 북한은 연20% 이상의 산업성장을 계속해 김일성이 심각하게 "일본을 추월할 것"을 이야기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체제운영방식,곧 자주 자립 자위의 폐쇄적인 계획경제가 한계를 드러낼 것은 시간문제였다.

냉전체제아래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자본재 원자재 원유 등을 지원받고 버텼다.

대부분의 경우 북한은 도입된 외채의 상환이나 바터(구상)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소련에 대해선 1949년 최초로 도입한 채무도 갚지 않았다.

1970년대엔 서방국가로부터 자본,기술과 상품을 도입했으나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금을 갚지 않는 버릇이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 결과 국제신인도가 추락하고,서방국가로부터의 기술도입과 설비 갱신의 길이 막힌 것이 1980년대이래 북한경제를 정체시킨 중요한 원인이 됐다.

이런 북한경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하나의 학습을 제공한다.

사회주의 국가간의 자본거래에 있어서 제국주의적 착취요소인 이윤획득의 목적은 배척되고,대신 형제국가로서의 원조적 측면이 강조된다.

그런 관점에서 북한의 행태는 과거의 사회주의 세계에서 이념적으로 용납되어 온 것이다.

서방과 동방은 엄연히 다른 규칙아래 게임을 한다.

오랫동안 명령체제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시장관행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탈북자의 정착을 맡았던 관리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당국이 마련해준 일터에서의 문제해결을, 그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자와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수 작업 등에 불만이 있거나 결근을 할 일이 있을 때 그는 그의 고용자보다 정착담당관리에게 이 일을 해결해 줄 것을 의뢰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일반 국민에게 민법이나 상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이 먹을것 잠자리 일터 기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던 곳의 주민에게는 각 경제 단위간에의 계약이 필요할 리 없다.

이 체제에서는 당만이 상,벌을 주고 인민간의 분쟁을 조정한다.

그러므로 오직 당과 인민사이의 관계만이 성립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북한도 자본주의의 시장 규칙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

우리 정부나 기업이 "자꾸 숨으려고만 하는 북한"과 경제관계를 일으킬 생각이 있다면,적어도 당분간 북한의 이러한 관행을 용인하거나 최소한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의 방북은 남북관계에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됐다.

그렇지만 당장의 대북거래에서 정부가 호언하는 거대한 특수가 존재할 곳은 없다.

당장의 이익을 약속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남.북 기업 정부 국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다.

지금은 북한을 이해하고 상호 적응해야하는 때인 것이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