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는 K씨는 유명 식품 유통업체의 대리점을 9년간 운영했다.

취급품목은 고추장과 간장,양념류 일체.

주변 음식점이나 인근 소규모 슈퍼마켓을 상대로 주문을 받아 납품했다.

대리점이 위치한 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주거지역.

주거밀집지라 상권이 잘 발달돼 오랜기간동안 순조롭게 대리점을 운영할 수 있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간이 슈퍼나 음식점이 대리점을 통하지 않고 조미료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달리 없었다.

그래서 특별하게 영업을 하지 않고도 주문량이 많았다.

안일한 운영에 젖어든 K씨는 자연적으로 영업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대리점 사장님으로 불리는 것 또한 기분 좋은 일중의 하나였다.

사장님 대우를 받으니 기분이 우쭐해졌다.

남자사원 2명이 영업을 전담하다시피 했고,K씨는 가끔 수금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주변에 대형 할인마트가 생기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막연하게 짐작만할뿐 대형 할인마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할인 마트는 대리점 보다 낮은 가격으로 똑같은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리점 마진 때문에 가격면에서 할인점에 비해 불리했으며 손님 입장에서는 물건을 주문하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빈번했기 때문에 K씨의 대리점 매출은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대형 할인 마트는 차례로 K씨의 고정고객을 뺏아 갔고 급기야 K씨 자신은 물론 살림만 하던 아내까지 나서 영업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거의 12시간 동안 영업을 하느라 돌아다녔지만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묘책을 찾지 못했다.

괴로움을 잊어보려고 주변 대리점 상인들과 술도 많이 마셨다.

그런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리가 만무했다.

할인마트가 들어선 후 K씨가 최종적으로 대리점을 그만두기까지는 3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오래도록 해 오던 일이라 딴 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K씨의 경우는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채 오랫동안 주변 상권의 힘에 기대 안이하게 대리점을 운영한 것이 실패의 주 요인이다.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잘되겠지 하는 요행수만 바라다 사업에 실패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만한 유통 노하우나 마케팅 전략 없이 장래성이 없는 사업을 오랫동안 고집한 것도 결과적으로 피해를 더욱 가중시켰다.

할인마트 입점 전에 미리 주변 상권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혹은 일찌감치 사업을 전환했다면 할인매장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권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한 그는 결국 재고도 다 처분하지 못한 채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길고 길었던 방황을 끝내야 했다.

<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 천리안 GO LH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