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최형식이 이정숙의 뒤를 밟은 지 닷새째 되는 날 저녁 6시 반경이었다.

이정숙이 모는 차는 한남대교를 건너 장충동 로터리를 지나 시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간 간격을 두고 뒤따르는 최형식은 지난번 이정숙이 간 적이 있는 홍은동의 스위스그랜드 호텔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전번에 갔었을 때 그곳에서 누군가 만났던 사람과의 밀회가 약속되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이번만은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니나다를까.

이정숙의 차는 스위스그랜드 호텔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최형식은 뒤따라 들어가 이정숙의 차가 보이는 곳에 주차했다.

이정숙이 차에서 내려 호텔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갔다.

이정숙이 전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차 속에서 밀회 당사자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여 방 호수를 알고 그곳으로 갔음이 쉽게 짐작되었다.

최형식은 어떻게 행동을 취해야 할지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밀회의 당사자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회자인 정동현이라면 밀회를 하는 방 호수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차에서 내렸다.

호텔 로비로 들어서서 프런트 데스크로 다가갔다.

"정동현씨가 이걸 가지고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방 번호를 잊어버려서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봉투를 내보이며 최형식이 말했다.

밀회 당사자가 정동현이라면 호텔 직원이 얼굴을 알아보았을 것이었다.

"누구신데요?"

"정동현씨와 같이 일하는 방송국 직원입니다"

최형식이 말했다.

"605호실입니다. 6층 5호실요"

"고맙습니다"

최형식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탄 후 6층에서 내렸다.

일단 복도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좀더 생각할 여유가 필요했다.

한 가지 방법은 605호실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이정숙이 그 방에서 나오는 걸 확인한 후 황무석 부사장에게 밀회상대와 장소와 시간 등을 정확히 구두보고로 보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무석 부사장은 구두 보고 보다도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을 찍은 사진과 같은 확실한 증거를 원할지 몰랐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외국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닌 듯했다.

최형식은 황무석의 의견을 타진해보기 위해 황무석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하고 황무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현장을 잡았어요"

최형식이 전화기에다 대고 속삭였다.

"상대는 누구야?"

황무석이 다급히 물어왔다.

"정동현이라는 놈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현장이 어디야?"

"홍은동에 있는 스위스그랜드 호텔이에요"

"이정숙이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

"10분 정도예요"

"내가 곧 그리로 갈게.여기는 세종문화회관 근처니까 15분내에 도착할 수 있어"

"6층 복도에서 기다릴게요"

황무석이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