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에크, 전경련 강연 ]

하이에크 생애의 친구이자,같은 동향 빈 출신 칼 포퍼( Karl Popper ) 교수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1958년 필자는 LSE 에서 포퍼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 제목은 "철학 논리 과학방법( Philosophy,Logic,Scientific Method )"이었다.

강의 제목만큼 내용도 쉽지 않았다.

필자는 이 분야에 기초가 별로 없는 지라 절반도 이해 못했다.

포퍼 교수는 오늘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저서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포퍼 교수의 강의 내용을 몇 구절 기억나는 대로 소개한다.

"인류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이는 마르크스의 기본 역사관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활용한 같은 대영 박물관 재료를 갖고도 인류역사는 계급 투쟁이 아닌 공생과 협동의 역사라고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사회현상이란 복잡하고 다기해서 시각에 따라 정반대된 결론도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이것이 사회과학의 한계이고 자연과학과의 본질적인 차이점이다"

강의는 이어졌다.

"그러면 자연과학에서 진리란 무엇인가"

포퍼는 이렇게 묻고 대답했다.

"자연과학 진리도 "한시적 성격( for the time being )"을 지닌 가설에 불과하다. 반론에 이겨내는 동안에만 진리로 인정,통용된다"

이같은 포퍼의 주장은 과학 철학계에서 한때 "과학적 진리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뒤에 포퍼의 진리기준도 쿤 박사의 "새 패러다임" 이론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포퍼의 강의와 관련해 지금도 기억이 유독 선명한 것이 있다.

1958년 1월30일 바로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쏴올린 때였다.

전 세계는 온통 놀랐다.

"어떻게 소련이 미국에 앞서 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었는가"

LSE 학생들도 이 질문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즈음 포퍼 강의실은 평상시보다도 더욱 들끓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포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스푸트니크를 발사할 수 있었던 것은 수학 물리 화학 등에 있어 서구보다 전통적으로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이야말로 우주선의 궤도 측정에 필수이다. 소련의 수학 과학 예술은 유태인 가족들이 그 전통을 지키고 있다. 소련내 유태인들의 가족 계보를 주목해야 한다. 유태인들의 향학열은 세계 으뜸으로 평가된다"

포퍼 교수 자신도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이었다.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이민갔다가 LSE 교수로 초빙됐다.

작은 키,유달리 큰 머리,푹 파인 눈,전형적인 유태인 풍모였다.

다시 하이에크로 돌아간다.

1978년 9월13일 전경련 주최 하이에크 강연 제목은 "부의 창조와 발전의 기본전략"이었다.

제목 자체가 차원 높고 경제학 울타리를 벗어난 철학 문화사적 향기가 물씬 났다.

"복잡한 사회에 있어 우리가 어떤 상품을 생산하고,그 상품을 누가 필요로 해 구입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의 기능은 가격 기능이다. 오직 가격 기능에 따른 개인 선택이 있을 뿐이다. 생산 소비 직업선택까지 정부가 명령하는 소련식 경제가 자유경제에 대응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결국 쇠퇴하고 말 것이다"

하이에크는 누구보다도 먼저 소련의 붕괴를 예견했다.

"근자 케인스 ( Keynes ) 경제학의 대두로 "총수요 총고용"에 관심이 쏠리는 데 이는 상대가격 구조나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전적으로 도외시하고 있다. 이런 거시경제는 일종의 계량적 흐름이나 통계적 자료를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코 유용한 과학일 수 없다"

하이에크의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었다.

"내가 케인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46년초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경제학설은 당신 제자들이 극단으로 몰고가 위험 상태에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에 케인스는 "내가 케인스 경제학을 쓴 것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 만약 내 학설이 현 시점에 와서 사회적으로 반작용을 한다면 나는 수정해서 새로 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케인스는 이 말을 하고 1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하이에크는 케인스가 새 학설을 쓰기 전에 돌아간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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