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영수회담은 고난의 역사라고 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모처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두 영수의 만남은 잔치 기분의 거품을 빼고 살펴보면 별로 구체적인 것이 없다는 현실주의적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화해 의지다.

영수회담의 결과는 남북공동선언에 요약돼 있다.

합의 내용들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대로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원칙의 천명 이상의 합의를 목표하는 것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일이 됐을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성격의 합의는 두 가지다.

첫째는 통일에 있어서의 자주 원칙에 대한 합의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군 철수를 겨냥한 외세 배제론을 내세워 온 북한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외세의 문제는 민족 주체성의 단순 논리로만 생각할 수 없는 여러 국면이 있다.

민족의 자주성과 자존심을 어떻게 생각하든지,한국의 통일이나 통일한국의 존립은 국제 환경을 전제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통일국가가 된다는 것은 홀로 우뚝 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국가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도 국제 환경과의 상호 조화를 포함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자주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 환경 적응도 우리의 삶을 우리의 뜻에 따라 실현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의미있는 것이 됨은 물론이다.

자주 통일의 강조가 반드시 단순한 민족주의의 논리가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둘째는 연방제의 조항도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지금 시점에서 남과 북의 만남이 가능한 것은 양측의 정치적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전제하에서 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연대를 수립하려면 연방제 이외의 다른 방식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연대는 느슨한 형태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단단하고 다면적인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연방제 합의는 화해론자나 통일론자나 지금 단계에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합의 사항이 아닐까 한다.

합의 사항의 나머지는 구체적인 내용에 관계된다.

친척방문,장기수의 문제는 8.15라는 날짜의 못을 박아 해결한다는 것,경제협력 및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의 교류를 추진하겠다는 것,그리고 이러한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하도록 한다는 것-이것들은 공동선언에 구체성을 부여한다.

이 사항들은 큰 것일 수도 있고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큰 것이 될지 작은 것이 될지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보기 전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신문에 전제된 공동선언문이 원문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으나,선언의 문면에는 눈에 띄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것은 작은 일이면서도 우리 사회의 풍조와 관련하여 중요한 일로 생각된다.

선언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의 앞에 들고,"남"과 "북"을 자연스러운 우리말 관습에 따라 "남과 북" 그리고 "남북"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에서 남한을 말할 때,"북남"이라고 해 온 것과 대조되는 일이다.

남이 먼저냐,북이 먼저냐 하는 유치한 싸움은 이제 없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치한 샅바싸움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투적 풍조에 관계된다.

대체로 우리 사회에선 도덕에서도 투쟁적인 것을 좋아하고,투쟁을 완화하는 부드러운 태도는 나쁜 타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말하는 경우에도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것은 정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역사라는,소위 춘추 필법의 고대적 역사관이다.

해방후의 우리 역사에는 살육과 파괴를 포함하는 여러 악몽과 같은 사건들이 들어 있다.

이것을 지나치게 가리기로 하면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문제도 바르게 풀 수가 없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고, 현재보다는 미래에 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을 위한 삶이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가 역사의 준거점이다.

남북의 문제에 있어서도 지표가 돼야하는 것은 우리 삶의 미래이다.

남북 화해의 과정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지금의 흥분과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이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사회나 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잠자고 있던 많은 요인들을 일깨워 세운다는 것을 말한다.

예상치 못하던 새로운 사태가 촉발되게 마련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근본에 흐르고 있는 도덕적 정신이다.

이 도덕적 정신이란 목표를 향해가는 강한 투지를 뜻하기도 하지만,들고 나는 많은 것을 감쌀 수 있는 너그러움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여러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남북문제에서 특히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깊은 의미의 도덕적 정신이다.

영수회담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그러한 정신이 커간다는 조짐인지 모른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