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가 해빙기를 맞고 있다.

그토록 염원하던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 실현됨으로써 남북한이 실질적인 대화와 협력의 시대, 평화공존의 새 시대로 접어드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형식적인 회담과 구호에만 그쳐 왔던 교류와 협력이 큰 물줄기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번 평양방문은 그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포용정책의 결과다.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공존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평화정착 및 교류.협력 확대,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온 결과 북한도 마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13일 평양에 도착한 김 대통령을 향해 순안공항의 환영객들과 연도의 평양시민들이 "김정일"과 함께 "김대중"을 연호한 것은 격세지감을 넘어 충격적 변화로 여겨질만하다.

남한 정부를 "괴뢰정권"으로, 대통령을 "괴수"로 불러온데 비하면 "이렇게 태도가 돌변했나" 싶을 정도다.

북측은 정당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갖은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한반도에서의 평화무드 조성을 기대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껏 남북한이 서로에 대해 겹겹이 쌓아 왔던 불신의 껍질을 하나둘 벗어버리고 진정한 화해협력의 장으로 나설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은 남북 모두에게 살 길이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마당에, 중국과 러시아 등 움츠렸던 주변 강국들이 다시 활개를 치려는 시기에 한반도의 한민족만 갈라서서 싸운다면 남북한 모두에게 손해다.

더욱이 주변 강국들이 이전처럼 이념적 연대에 따라 남북한을 도와줄 상황도 아니다.

특히 북한으로선 피폐한 경제를 되살리고 국제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남한의 협조와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북한은 그동안 제한적 경제개방을 통한 회생을 모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개방과 체제수호라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은 만성적 식량난과 가정용은 물론 공장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전력난에 직면해 있다.

도로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도 턱없이 미비하다.

김 국방위원장 주도로 식량증산 등에 나서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긴 하지만 자력으로는 본격적 경제회복이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보완적 발전관계를 맺는 것이 공존공영의 첩경이다.

남한 역시 경협을 통해 투자수요를 창출하는 등의 여러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경협은 일방적,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호혜적이다.

북한은 또 최근 국제무대로의 진출을 위해 다각도로 교섭중이지만 이 역시 남한과의 관계개선과 지원 없이는 성사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반도의 해빙은 한반도 안에서만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빙하의 녹은 물이 생태계의 대격변을 초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은 한반도의 상황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변화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이들 강국은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자 긴박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한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렸고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남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중국도 김 국방위원장을 초청,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었다.

일본도 북한과 수교교섭을 진행중이다.

때문에 한반도 상황은 구한말 외세가 넘보던 때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장래는 기본적으로 남북한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교류의 폭을 넓힐 때 스스로의 장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의 평양회담은 민족의 장래를 가름할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