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현재 제3당의 부총재직을 맡고 있는 도만용 전직 장관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백인홍은 벽 쪽 선반 위에 놓인 사진들에 시선이갔다.

재무부 관료 시절 당시 권력자에게 브리핑하는 사진,은행장 시절 은행 신축건물의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하는 사진,재무장관 시절 국제회의에서 연설하는 사진,사진들...

그리고 엉터리 3류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사진...

백인홍은 그러한 사진 속에 꼭 있어야 할 사진들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다.

재무부 관료 시절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 도장 찍은 대가로 무자비하게 울거먹은 거액의 뇌물과 황금알을 낳는 그의 도장 찍는 모습,은행장 시절 대출대가로 대출금액의 1퍼센트에서 5퍼센트까지 커미션조로 착실하게 야금야금 받아 챙기는 모습,재무장관 시절 걸핏하면 주석으로 금융기관장들을 소집하여 헤어질 때면 주머니가 터질 정도로 챙겨넣은 돈 봉투 때문에 뒤뚱거리며 차에 올라타는 모습,모습들...

그리고 현정권 초기에 뇌물수수죄로 걸렸을 때 일본으로 튀었다가 때가 되어 귀국하기 바로 전날까지 일본의 최고급 골프장에서 유유자적 놀다가 김포공항에 귀국할 때는 들것에 실려 중환자로 둔갑하는 사진...

백인홍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어,백 사장,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도만용 부총재가 손을 내밀었다.

백인홍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은 후 그가 상좌에 앉자 그 옆 소파에 앉았다.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직도 금융계에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도만용에게 회사채 발행에 도움을 청하려고 약속했으나 도 장관이 바쁜 것 같지 않아 그 문제를 얼른 꺼내지 않았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떨거지 관료와 엉터리 정치인들과의 대화는 때로는 재미있는 코미디쇼를 보는 것 같아 기분전환도 되었으며,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러한 대화 속에서 알짜배기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하,이거 정치자금 때문에 큰일이야.우리 당 총재도 혼자서 끌어대느라고 정신이 없어"

도만용이 돈 얘기부터 꺼냈다.

"정치자금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가능성이 없나요? 정치가는 정치가대로,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백인홍이 점잖게 말했다.

"말 마,현 집권자가 자기 혼자만 깨끗한 척하는데 말이야.현실이 받아들이지 않는데 말이 먹혀.그게 현재 국민 수준인데 어떡해? 하루아침에 선진국처럼 될 수 있어? 오히려 박정희 시대부터 전 정권까지가 덜 심했던 것 같아.지금은 아주 음성적이고 중구난방이야."

"한 나라의 통치자가 공식석상에서 "나는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예요"

"자기가 직접 안 받았다는 거지,자기 가족과 가신들은 받아챙기는 데 도사들이야."

도만용이 말했다.

"박정희 시대와 전 정권은 어떻게 정치자금을 조달했는데요?"

아는체 하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항상 말할 기회를 무한정 주는 것이 호감을 사는 좋은 방법임을 백인홍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