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3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된다.

해방후 55년만에 처음으로 양측 지도자가 얼굴을 맞대는 순간이다.

기총소사가 난무했던 서해교전이 바로 1년전 6월15일의 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자체 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의미가 있다.

지구촌의 촉각도 한반도에 온통 쏠려있기는 마찬가지다.

회담일정이 하루 순연되는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지만 이것이 정상회담 전체 일정과 구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여러가지 주문과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풀어야할 과제가 얽힌 실타래 같고 남북이 함께 넘어야할 산이 태산만 하기에 더욱 그렇다 하겠다.

과제로 따지자면 굵직한 주제의 목록만 작성하더라도 수백,수천건에 이를 것이다.

50여년동안 쌓아온 갈등이며 서로가 달리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켜켜이 쌓여있는 묵은 사연들이 또 얼마일 것인가.

서로의 국체를 인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정치.군사적인 허다한 주제들과,특히 이산가족 상봉과 같이 이제 더는 덧없는 시간만 허송할 수 없는 다급한 주제들에 이르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는 거대한 산과도 같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오히려 두 지도자가 숱한 기대와 주문의 중압감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적 시각이 최근들어 매우 우호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후견역을 자처하는 중국도 그렇지만 핵과 미사일 문제로 다소는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왔던 미국과 일본이 비교적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정부가 분명한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음을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남북 문제는 곧 민족문제"이며 우리 스스로 이를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음을 내외에 분명히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이미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역사적인 첫걸음이니 만큼 단기적이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지향하기 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정공법을 택해주기 바란다.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화해와 공존의 첫걸음이 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물론 경제협력 등 융통성이 필요한 부분은 그것대로 대응하는 유연한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일 수 있다는 격언은 바로 지금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준비된 말일지도 모른다.

더없이 맑은 이 아침에 1백만 독자와 더불어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행 장도를 축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