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맞은 편에 있는 나자로의 집.노숙자들의 보금자리다.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킨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김흥용 (61)원장을 보고 "돈 좀 있어 사회사업을 하는가 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광부 출신.열여섯에 태백 막장에서 탄을 캐는 생활을 시작으로 학교급사,잡부 등을 거쳤다.

한국은행에 일용직으로 들어가 사서를 끝으로 그만둔 뒤 퇴직금을 모두 털어 이 일을 하고 있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배고픈 설움을 알기 때문일까.

어려운 중소기업은 누가 돕는가.

회사가 막판에 몰렸을 때 힘이 되는 사람은 금융기관인가,엔젤투자자인가.

서울 역삼동의 인터넷TV네트웍스.이 회사가 문을 연 것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8년 4월.김명환(41) 사장은 차세대 유망품목이라고 확신하고 인터넷TV 사업을 시작했다.

직원 2명에 자본금 1억5천만원.사무실 임차료를 내고 남은 돈이 7천만원.사무실 집기를 사고 사업설명회와 광고를 하니 3개월만에 돈이 바닥났다.

이때부터 자금난이 시작된다.

3천만원을 빌려왔지만 운영비와 월급을 주자 봄바람에 눈녹듯 사라졌다.

직원은 7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추석연휴가 닥쳤다.

없는 살림에 명절 닥치면 더 서러운 법.그렇다고 직원들이 맨손으로 휴가를 떠나게 할 수는 없었다.

1만5천원짜리 비누 선물세트를 사줬다.

"연휴 잘 보내고 다시 만나 열심히 일하자"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은 채. 직원들이 퇴근한 뒤 사무실에 혼자 남은 김사장은 거래처에 대한 결제대금 마련으로 고심하기 시작했다.

대금독촉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사무실을 전세에서 월세로 바꾸기로 한 것.간신히 해를 넘겼으나 자금난은 좀처럼 해소될 길이 없었다.

금융기관을 다니며 대출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담보를 가져오라는 것일 뿐. 작년 2월초.잔설을 밟으며 출근하니 사무실이 컴컴했다.

아무리 스위치를 올려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매달 40여만원에 이르는 관리비를 몇달동안 내지 못해 관리사무실에서 전기를 끊었던 것.고개를 숙이고 좌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영문을 알아보니 직원 2명이 자신들의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밀린 관리비를 낸 것.월급도 받지 못하던 직원들의 도움은 사장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김사장은 LG전자와 LG반도체에 근무하면서 마련한 아파트를 처분했다.

싯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급하게 팔고 월세생활을 시작했다.

이 돈을 회사에 투자한 것은 물론.이에 동참해 직원들도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돈을 구해왔다.

직원을 위해 애쓴 사장의 마음에 고마와하며 회사돕기에 나선 것. 이 자금은 회생의 밑거름이 된다.

이후 중진공이 5억원을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엔젤투자가 이어진다.

임직원의 단합과 기술력을 인정한 삼성전기,현대산업개발,코오롱건설과 국민기술금융 등 창업투자회사가 돈을 댔다.

올 2월에는 미국계 벤처캐피털인 H&Q가 2천만달러나 투자했다.

벤처거품이니 테헤란밸리 위기니 하는 말이 요즘 떠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풍부해진 자금이나 기술 때문이 아니다.

경영진과 직원간에 형성된 신뢰가 어떤 폭풍우에도 배를 지켜주는 든든한 닻이 되고 있어서다.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