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워싱턴 특파원>

미국 노동계 노선 수정의 진의는 무엇일까.

미국 노동자연맹( AFL-CIO )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친화적 노선을 옹호하고 나선데 따른 의문이다.

지난 3일 시카고 "배관공노동조합" 건물에서 열린 포럼에 나온 린다 샤베즈 톰슨 AFL-CIO 부회장은 "미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고용주에 대해 강력한 형사책임을 물어야 하며 불법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사면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1백년전 뉴욕항을 통해 들어온 유럽노동자든,1년전 멕시코 국경을 몰래 넘어온 불법노동자든 이제 AFL-CIO 는 이들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결사여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AFL-CIO 의 입장은 외국노동자를 미국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갉아먹는 위협적 존재로 간주해왔던 미노동계의 종래 견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실제로 AFL-CIO 는 1980년 중반부터 연방정부가 불법외국노동자를 고용하는 고용주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AFL-CIO 는 이날 행사에서 고용주들의 불법착취현장을 고발하기 위해 10여명의 피해자들을 증언대에 세우기도 했다.

최근 멕시코국경을 넘어와 일용근로자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엘리세오 샤베즈는 그의 브로커가 8시간은 샤베즈라는 본명으로,또다른 8시간은 다른 사람이름으로 일하라고 강요했다고 폭로했다.

이같은 편법은 시간외수당을 줄이기 위한 고용주의 골육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알레한드로 제페다라는 세탁공은 주민등록번호( Social Security Number )가 없어 착취를 당한 경우. 제페다는 자신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용주가 그를 즉시 해고한 후 다시 채용하는 술수를 부렸다고 증언했다.

재채용시 임금이 최저임금으로 깎인 것은 물론 복지수당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성희롱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카르멘 나헤라라는 처녀는 감독관의 끊임없는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지만 출입국관리국( INS )에 본인의 소재를 알리게 될까봐 전혀 불평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녀는 감독관이 영어를 못하는 자기를 마치 먹이로 보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증언에 자극받은 AFL-CIO 는 "이제 문제는 이민보다 인권"이라고 그 성격을 재규명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1백년전 유럽노동자들이 시카고로 몰려들어 식품포장공장에서 착취당했지만 이제는 아시아와 중남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폭로한 조 한센 식품가공노조 재정담당국장은 "미국 이민법은 고용주들이 외국노동자를 수입하고 착취하기 좋게 꾸며진 것"이라며 이민법 자체를 단두대에 올려놓고 힐난했다.

AFL-CIO 가 외국노동자들에 대한 입장을 1백80도 바꾼 속사정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최장기 호황,그리고 이와 묶여있는 미국내 일손부족과 무관치 않다는 유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불법 외국인노동자들이다.

만약 모든 외국노동자들이 미국에서 일시에 사라진다면 미국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한다.

냄새나고 더럽고 힘든 건물청소,쓰레기수거,정원관리,공사장 막노동 등을 메우는 외국인 노동자가 5백만~6백만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른 좋은 일자리가 널려 있는데 최저임금에 붙들려 있을 미국인은 없다.

그 공백을 이들 외국인노동자가 메워야 한다.

그러나 미국경제도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이미 지난 5월엔 11만6천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마침내 미국경기가 식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실업문제가 본격화돼도 AFL-CIO 가 요즘처럼 친불법외국노동자 노선을 유지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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