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최형식과 전화통화를 끝낸 권혁배는 고급한식집 방에서 교자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은 백인홍에게 술잔을 권했다.

대해직물 인수를 위한 매매계약 준비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대해그룹의 진성호와 백운직물의 백인홍 사이를 엮어준 것이 권혁배 의원이었으므로 두 사람이 주석을 마련한 것이었다.

백인홍이 7여 년 전 하청업무를 했던 모기업의 주요업체를 인수하는 데서 오는 가슴 뿌듯함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면,권혁배로서도 두 사람 사이의 거래를 성사시켜줌으로써 진성호가 그에게 은밀히 약속한 거액의 커미션을 챙기게 된 기쁨이 있었다.

물론 그런 수입은 모든 정치자금이 그러하듯이 밀물처럼 쓸려들어와 썰물처럼 빠져나가게 마련이지만,여하튼 예상치 못했던 수입이 생긴 터라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권혁배로서는 진성호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신의 지역구에 공장을 가지고 있어 서로 상부상조하는 터이긴 하지만,근래에 대선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재정적인 부담만 주었던 터라 오래된 빚을 갚은 기분이 들었고,백인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어 친구를 도왔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그러나 권혁배는 마음 한편으로는 백인홍이 너무 성급히 매입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백인홍의 매입 결정은 냉정하게 계산된 결정이 아닌 다분히 감정이 섞인 결정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대해직물 매입자금 조달은 잘 진행되고 있어?"

권혁배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뛰어야지.잘될 거야" 백인홍이 말했다.

"현금 800억을 약속한 시간내에 구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새 외환위기니 뭐니 해서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고.."

"잘될 거야.인수자금 800억 중 400억 정도는 의류판매장으로 쓰고 있는 부동산 몇 곳을 팔아서 마련하고,나머지 400억은 50억 정도씩 8개 종금사가 주관하여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했지"

"요즈음 부동산이 잘 매매가 될까?"

"워낙 요지라 관심 있는 자가 있을 거야.특히 L그룹 같은 백화점 재벌은 유동자금도 충분하고 그런 요지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이니까"

"윤 회장이 아직도 L그룹 부회장으로 있지.힘이 있을걸.윤 회장에게 부탁해봤어?"

"이미 얘기했어.내일 점심때 만나기로 했어"

권력자의 사돈인 윤 회장은 권혁배 의원의 13년 선배로 서너 번 백인홍과 주석을 같이한 적이 있었다.

"회사채 발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요사이 종금사도 자금이 아주 딸리는 모양이던데"

권혁배가 염려해주었다.

"쉬운 일은 아니야.요사이는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는 종금사가 일단 회사채를 대부분 인수해주어야 해.일반인에게 잘 소화가 안 되니까"

백인홍은 술을 마시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