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서 <고려대 교수. 경영학>

지난 주 우리 경제의 핫이슈는 현대그룹사태였다.

재벌그룹의 대명사인 현대그룹의 문제는 바로 우리경제의 거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한경에서는 일련의 사실보도와 기획기사를 통해서 현대를 포함한 재벌의 문제를 상세히 다뤘다.

현대사태 초기에는 부실한 현대그룹의 재무상태와 위기극복가능성 등에 대해 다뤘으며 후반부에 와서는 현대그룹 발표 해결책에 대한 평가에서 나아가 재벌의 소유 지배문제에 대한 기획보도를 마련함으로써 독자의 정보욕구를 만족시키고 있다.

다만,현대문제의 발단과 이의 해결책을 바라보는 한경의 시각도 일정한 틀에 묶여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자금부족에 대한 해법으로 현대가 그룹 계열사들을 통해 "6조원의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자구책을 당연시해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정책당국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대책이 현대사태를 진정시키고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이는 재벌그룹의 파행적 경영행태를 다시 한번 인정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태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재벌의 불투명한 경영행태와 경영세습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유발될 수 있는 해당기업의 부채의존적 자본구조,과도한 투자,그로 인한 경쟁기업의 출현 제한과 경제력 집중,그리고 경제전체의 위험도 증가 등이다.

따라서 특정 계열사가 부실화됐을 때 여타 우량한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해 퇴출을 막는 관행이야말로 기업집단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유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해결방안에 대한 문제점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경영권 세습과 족벌체제의 배경으로서 부의 불법적 대물림을 조장하는 허술한 상속세제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도 아쉬웠다.

한발 더 나아가 재벌은 고도경제성장정책의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재벌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도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재벌체제가 경쟁우위를 갖는 배경에는 과거 공정거래정책 산업정책 세제정책 여신정책 등 재벌관련 정책이 일관성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정치권에 의한 사업기회와 금융자본의 배분은 비자금조성과 은밀한 거래에 유리한 친족경영을 선호하게 만든다.

따라서 재벌을 키워온 몇몇 대주주의 공과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원칙"보다는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조직문화,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시장기능의 대치,재벌의 금융자본지배 등의 이슈가 재벌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축이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근래 필자가 아쉬워하는 부분은 정부가 갖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떤 언론에서도 별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근 금융구조조정에 소요된 공적자금의 규모가 의도적으로 과소평가되었다는 의구심과 함께 추가로 필요한 공적자금의 동원과 관련,정책당국자와 전문가들간에 상당한 견해차를 보인 바 있다.

상당수의 여론이 국회동의를 거쳐 공적자금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금융당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국회동의를 거치지 않으려는 행태는 바로 우리 정책당국자들이 갖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층분석이 필요하다.

또한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많은 금융기관 임직원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지만 이를 알면서도 방조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의 도덕적 해이는 산하금융기관 임직원의 상당수가 바로 감독당국 출신자라는 것에도 크게 기인하며 이는 규제완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언론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현대사태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부분은,바로 정부의 지배구조와 인센티브 문제다.

즉 정책당국자를 감시하고 견제할 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보다 근본적 문제인데 그나마 언론이 이 일을 맡을 수밖에 없다.

이는 언론으로서도 다루기 버거운 부분이겠으나 성역 타파의 용기를 기대한다.

kspark@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