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길승 SK회장은 지난해 모 월간지가 경제전문가 1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오너경영자인 정주영 현대명예회장, 정문술 미래산업회장과 함께 가장 뛰어난 기업인 3위에 올랐다.

손 회장은 고 최종현 회장과 함께 SK그룹을 키웠고 전문경영인으로선 처음으로 4대그룹 총수자리에 올랐다.

SK그룹 도약의 기반이 된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 인수가 그의 작품이다.

신세기이동통신을 인수하기 위해 유상부 포항제철 회장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은 것도 손 회장이었다.

정재계 간담회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행사에는 그의 목소리가 빠지지 않는다.

정부의 무리한 재벌개혁정책이 나올때 재계 입장을 조리있게 제시하는 등 손회장은 오너급 위상을 구축하고있다.

그는 한국재계에도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한국산업사의 역사와도 같은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퇴진은 전문경영인의 시대를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벤처창업 열기도 전문경영인시대를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있다.

삼성물산에서 인터넷사업을 담당하다 인터넷경매업체인 옥션으로 자리를 옮긴 이금룡 사장이나 데이콤 마케팅팀장으로 일하다가 전자상거래 업체인 인터파크로 자리를 옮긴 유종리씨등이 그런 케이스다.

하지만 전문경영인체제의 근본적인 한계와 결함에 대해 말하는 학자들도 많다.

전문경영인은 오너나 주주들을 만족시키기위해 필연적으로 "단기승부에 집착하게 마련이고 긴 안목의 큰 승부와 결단에 취약하다"는 지적들이다.

재계에선 흔히 롯데와 신세계를 놓고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체제를 비교한다.

지난 80년대 초반 명동상권에 한계를 느낀 백화점업계는 영등포 부도심으로 진출을 꾀했다.

당시 이미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되던 신세계는 롯데보다 한발 앞서 영등포상권으로 진출한다.

신세계는 상권변화를 분석하고 선수를 치는데는 롯데보다 기민했지만 투자규모를 결정하는데 보수적이었다.

신세계는 당시 영등포 상권에 딱 맞는 중규모 백화점규모로 영등포점을 지었다.

반면,오너경영체제인 롯데의 신격호 회장은 영등포에 신세계보다 한 발 늦게 뛰어들었지만 초대형 도심형 백화점을 지어 단숨에 신세계를 압도했다.

이것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백화점업계의 선두주자 신세계가 롯데에 밀리기시작하는 시발점이었다.

이어 신격호 회장은 일본롯데 참모들 조차 "리스크가 너무 크다"면서 반대하던 잠실프로젝트(롯데월드)을 밀어부쳐 마침내 롯데를 유통업계의 왕좌에 올려놓았다.

재계에선 만약 롯데도 전문경영인체제였다면 잠실에 스스로 상권을 창출하는 초대형 투자를 감행하지 못했을 것으로 본다.

전문경영인체제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거꾸로 움직이는 사례도 있다.

국내 처음으로 지난 95년 사장공채를 했던 대웅제약의 경우 지금은 오너경영체제로 돌아갔다.

재계에선 최근들어 한국적 대안으로 전문경영인과 오너경영인이 적절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투톱 시스템이 시도되고 있다.

SK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인터넷사업과 생명공학산업등 리스크가 크고 대규모 장기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은 오너인 최태원 SK 회장이 맡고 일상적인 경영은 주로 손길승 회장의 몫이다.

동국제강도 올해 포항제철 사장 출신인 김종진 부회장을 영입,오너인 장세주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투톱을 구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황인학 박사는 "제조업 투자가 완료된지 오래고 공장폐쇄등을 통해 이윤극대화만을 추구하는 미국에선 전문경영인체제가 잘 돌아가지만 아직 성장을 더 해야하고 과감한 투자결단을 해야하는 한국적 상황에선 전문경영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오너냐 비오너냐에 상관없이 경영자질을 따지고 실패할 경우 교체되는 전문적인 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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