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독점전재 ]

몇몇 사람들이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소자본으로 비좁은 사무실에서 출발,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

차세대 시스코나 아마존을 꿈꾸는 창업자들의 목표다.

미국 투자가들이 많은 돈을 벤처캐피털에 쏟아 붓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신경제의 성공이 세계의 부러움을 사면서 미국 벤처캐피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모든 나라들은 저마다 작은 사무실에서 아이디어를 내놓고 벤처캐피털이 이를 황금으로 변화시키기를 고대하게 됐다.

벤처캐피털이 없다면 벤처회사들은 위험을 기피하는 은행으로부터 어렵게 대출을 받더라도 수익은커녕 매출을 올리기도 전에 높은 이자부터 갚아야 한다.

벤처캐피털은 몇년간 가치환산이 안되는 신생기업의 주식을 받고 거액을 내놓는다.

이들이 언젠가 수십억달러짜리 유망업체가 된다는 쪽에 내기를 거는 것이다.

은행이나 대형 투자회사에만 의존했다면 시스코 같은 신생기업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벤처캐피털이 벤처 성공의 전부는 아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거시경제정책,유연한 노동시장,실패를 탓하지 않고 스톡옵션만 있으면 무상으로라도 기꺼이 일하려는 기업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80년대 공룡산업을 현재의 고성장의 첨단기술산업으로 변모시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역시 벤처캐피털이다.

하지만 벤처캐피털 산업이 점점 커지고 세계화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캘리포니아 먼로파크에 둥지를 틀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기껏해야 수백만달러를 투자했다.

이와 함께 기업을 증시에 상장할 수 있을 때까지 조언과 모니터링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전문 분야별로 명성도 높아 신생기업들이 누구에게 찾아가야 할지도 명확했다.

그러나 지금 벤처캐피털 산업은 막대한 자금이 흘러다니는 거대산업으로 성장했다.

약 2백개의 투자회사가 벤처에 거금을 수혈하고 있다.

지난해 벤처캐피털의 자금 규모는 5백60억달러(62조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벤처캐피털의 옥석을 구분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투자자금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리스크도 커진다.

반면 조언과 모니터에 투자하는 시간은 크게 줄었다.

벤처캐피털이 신생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이들이 회계,마케팅,법률상담을 해준다고 해서 몇주만에 가공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전망있는 사업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는 극히 의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주가 넘쳐나 주가하락이 계속되면 벤처캐피털의 장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이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중 이익을 내는 회사는 25%에 불과했다.

지난 15년간의 68%와 비교할 때 이익없이 상장되는 기업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벤처캐피털은 투자기업중 20%에서만 이익을 얻고 있다.

나머지는 현재 투자수익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벤처캐피털의 붐은 인터넷이 만들어낸 "기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한동안 성공적 기업공개(IPO)를 보장해준 증시 거품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주가하락으로 기업공개를 늦추거나 취소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 투자가들은 더 이상 증시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게 됐다.

그렇지만 다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벤처캐피털을 통해 낭비되는 돈도 다시 늘어날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무조건 돈을 뿌리면 열매가 맺힌다는 식의 사고는 위험천만하다.

최근 1억3천5백만달러(1천5백억원)의 투자자금을 허공으로 날리고 도산한 유럽의 스포츠웨어업체 부닷컴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거름이 너무 많아도 뿌리가 썩는다는 사실이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 hankyung.com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6월2일자>